김태리 성장기… “인기? 금방 사그라지겠죠” [인터뷰②]

입력 2016-06-11 06:01 수정 2016-06-11 11:08
서영희 기자


단언컨대 김태리(26)는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신인이다. 영화 ‘아가씨’의 숙희는 그만큼 강렬했다. 데뷔작 한 편으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제2의 전도연이 될 것’이란 기대어린 시선들이 쏟아진다.

김태리가 배우의 꿈을 품은 건 그리 이르지 않았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인 그는 연극부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연기 재미를 알아갔다. 어느 날 문득 ‘이거 평생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그가 무언가에 이토록 빠진 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창시절 김태리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혼자 노는 거 되게 좋아했어요. 막 두루두루 어울려서 노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친한 친구들끼리 소규모로 놀았어요. 공부는 진짜 잘 못했어요. 대학은 그냥 운이 좋아서(웃음). 저는 그림 그리고 뭐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아님 활동적인 거. 걷고 자전거 타고 산 타는 거 되게 좋아해요. 근데 또 잠자는 것도 엄청 좋아해요. 별로 정의내릴 수가 없네요(웃음).”

-미술 쪽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나?
“있었죠. 근데 그것도 그냥 막연하게 ‘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한 번 도전해볼까?’ 그런 정도였어요. 고등학교 때 디자인과를 나왔는데 하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다가 연극 동아리 들어갔다고. 어떤 계기로 들어가게 됐나.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동아리에 들었어요. 그냥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선 동아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웃음).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연극동아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신입생들 보라고 공연을 했는데, 가서 봤더니 재미있겠더라고요. 여러 동아리 중에 제일 끌렸어요. 그렇게 (연극부에) 들어가게 됐죠.”

-원래 연기에 좀 관심이 있었나.
“아뇨. 제가 처음 본 연극이 그때 대학 와서 본 선배들 공연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해볼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죠. 그냥 대학생활 즐겁게 해보려고 들어간 거였어요.”

-어떤 계기로 연기를 깊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입학한 첫 해였는지 그 다음해였는지…. 제가 모노(mono) 연극을 했었어요. 작은 에피소드를 혼자 연기했는데 작품 끝나고 사람들이 쳐주는 박수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또 다른 공연에서는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면서 더 재미를 느꼈어요. 평생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이 든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른 꿈을 꾼 적이 있나.
“원래 꿈은 따로 없었어요. 남들 다 꾸는 장래희망? 그런 것들만 있었고 딱히 ‘내가 이걸 위해 공부할 거야’라는 마음이 든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 처음 생긴 꿈이 배우였던 거죠.”


-신문방송학과에 간 건?
“그냥. 점수에 맞춰서…. 다들 그러지 않나요(웃음)?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너무 놀랍고 행복했겠죠. 그런데 사실, 알기 힘들잖아요.”

-진짜 원하는 걸 찾게 되다니 행운이네.
“그죠. 맞아요. 행운이죠.”

-연극할 때 희열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
“한 번 해보면 진짜 희열이 있어요. 막 마약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래서 주저 없이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대학 졸업 후에는 극단 이루에서 활동했다고.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동아리 선배의 친구 분이 저희 극단 선배이신데 그 분한테 한 달 정도 연기 수업을 받기로 했어요. 그리고 극단에서 스태프를 구하는데 시간 되면 아르바이트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죠. 그때 전 이미 대학로에 너무 나가고 싶어 할 때였거든요. ‘너무 좋다’며 흔쾌히 들어갔죠.”

-영화배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는?
“굳이 영화배우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 전에도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고요.”

-영화 해보니 연극과 어떤 부분이 다르던가.
“일단 준비과정이 다르죠. 연극은 다 같이 매일매일 모여서 시나리오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리딩을 하고 동선을 짜요. 99% 완벽한 상태로 준비를 마친 뒤 공연을 올리죠. 영화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각각의 분야마다 전문적인 팀들이 있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해나가죠. 배우들은 배우 나름의 고민을 하고요. 아, 그리고 순서! 순서가 많이 달라요.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쭉 이어가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뒤죽박죽 찍는 경우가 있어요. ‘아, 이런 게 많이 다르구나’ 느꼈죠.”


-영화 찍으면서 무대에서 느낀 희열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 있나.
“그런 종류의 희열은 아니었지만, 번뜩번뜩 창의적인 생각이 들 때 너무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숙희가 잘 안 보이고 어렴풋하다가 어느 순간 얘가 하는 행동이나 표정, 말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거예요. 그럼 너무 행복하죠. ‘연기 너무 즐거워. 너무 재미있어’ 그랬던 것 같아요.”

-앞으로 영화 쪽에 집중할 계획인가.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처음 연기 시작할 때도 연극을 하고 싶었지, 방송이나 영화 쪽은 정말 생각도 안 했었거든요. 근데 또 지금 이렇게 영화를 찍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혹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특별한 건 없고) 그냥 계속 좋은 작품들 만나서 꾸준히 하는 거? 그게 소망입니다(웃음).”

-배우로서 그리는 지향점은?
“오래 꾸준히 느리게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 큰 걸 빠른 시간 안에 하고 있는 같아요. 제 중심을 가지고 좀 천천히 하나하나 밟아갔으면 좋겠어요.”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 부담스럽진 않나.
“근데 이거 금방 사그라질 것 같아요. 정말로(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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