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 “아가씨, 내가 욕심부리는 건가 싶어” [인터뷰①]

입력 2016-06-11 06:00 수정 2016-06-11 11:07
서영희 기자

영화 ‘아가씨’의 하녀 숙희는 아주 똑소리 난다. 능글맞은 사기꾼 백작(하정우) 앞에서도 한 마디 지는 법이 없다. 가여운 아가씨(김민희) 곁을 지키며 그를 살뜰히 챙기는 손끝이 야무지다. 또랑또랑한 눈빛과 다부진 표정까지…. 배우 김태리(26)는 숙희 그 자체였다.

1500여명이 몰린 오디션에서 그를 콕 집어낸 건 박찬욱(53) 감독의 눈썰미였다. 연기 경험이 부족할지언정 좀처럼 떨지 않는 담대함을 높이 샀다. ‘노출 수위 협의 불가능.’ 단호한 조건에도 과감하게 도전한 그다. 실제로 당차고 쾌활한 성격의 김태리는 당당히 ‘박찬욱의 새 뮤즈’가 됐다.

“아이, (노출 부담은) 당연히 있었죠(웃음).”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리는 싱그러운 미소로 입을 뗐다. 그는 “감독님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시나리오까지 보고난 뒤 출연을 결정했다”며 “무엇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정작 그가 고민한 건 다른 지점이었다. 김태리는 “지금 단계에서 이렇게 큰 작품에 출연하는 게 욕심 부리는 건 아닐까 싶었다”며 “이 선택이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고 했다.

“원래는 작은 역할부터 하는 게 맞는 거죠. 순서가 좀 (꼬였는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이것도 단계 중 하나니까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션 준비는 어떻게 했나.
“딱히 준비한 건 없고, 원작 소설을 읽고 갔어요. 오디션 보기 전날 급히 서점에 갔는데 다행히 한 권 남아있더라고요. 그걸 사가지고 집에 와서 열심히 읽었어요. 오디션장에 가서는 주시는 대본을 읽어보고 영상 촬영을 했어요. 그 파일을 감독님께서 보시고 나중에 만나보자고 연락 주셨어요.”

-박찬욱 감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낌은?
“수더분했어요(웃음). 계속 ‘허허허’ 웃으시고. 격식 있거나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어요. 운이 좋았죠. (제가) 그때 떨지 않은 걸 되게 좋게 보신 것 같아요.”

-오디션 때는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나.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을 했어요. 무슨 영화 좋아하냐, 무슨 배우 좋아하냐, 원작을 보고서는 어땠냐, 어떤 점이 재미있었냐, 그런…. 깊은 얘기를 하진 않았어요.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캐스팅이 결정됐다는 얘기를 들었죠.”

-선배 배우들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나.
“제가 개인적으로 김민희 선배를 되게 좋아했거든요. 선배가 딱 들어올 때 너무 예쁜 거예요. 미소가 사랑스러운 거 있잖아요. 말도 되게 조근조근 하시고, 성격이 저랑 완전 다르시더라고요. 그냥 다 좋았어요.”


-하정우·조진웅은 어떤 조언을 해줬는지.
“조진웅 선배는 항상 ‘편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제가 긴장한 것 같으면 ‘내 얼굴 보고 편하게 하라’고 얘기해주셨고요. 하정우 선배는 ‘네 목소리를 내라’고. ‘준비가 안됐다고 너무 떨지 말고 부딪히면서 캐릭터를 알아 가라’ ‘지금 단계에서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일본 로케이션이랑 지방 촬영이 되게 많았는데 숙소를 혼자 쓰니까 외롭더라고요. 선배님들이 다 잘해주시고 그래도 허전한 게 있더라고요. 약간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이기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계속 애를 썼어요.”

-어떻게 마인드컨트롤을 했나.
“당연히 촬영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 능력의 한계가 있잖아요. 내 지금 단계에서 못해내는 것들. 그런 자괴감에 휩싸여서 걱정만 했었는데 그러지 말기로 했어요. ‘괜찮아, 너는 처음 하는 사람이니까 못해도 괜찮아’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감독님도 그런 식으로 북돋아줬나.
“아니요? 감독님 별로 안 북돋아주시는데? 현장에서는 별로 그런 말씀 잘 안하세요. 칭찬도 잘 안하셨어요. 그래서 더 위축되고(웃음). 그런데 요즘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 제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하, 다 끝나고 나서야(웃음).”


-박찬욱 감독 디렉션이 워낙 세세한 편이라 힘들지는 않았는지.
“저는 그런 게 훨씬 좋죠. 두루뭉술하거나 제게 맡겨놓는 것보다 세세하게 집어주시는 게 저한테는 훨씬 도움이 됐어요. 감독님한테 신뢰가 갔던 것도 그런 부분이었고요. 보통은 자유롭게 하라고 풀어주시다가 제가 막힐 때 한 마디 툭 던져주시는데 그게 해결책이 되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원래 본인이 그렸던 캐릭터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
“달라졌다기보다 캐릭터가 더 열린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잡아주신 거죠. 예를 들어 제가 그냥 땅을 쳐다보고 있으면 감독님이 ‘이쪽을 한 번 쳐다보고 말을 해보라’고 말씀을 해주세요. 그럼 확실히 뉘앙스가 달라지는 거예요. 거기서 생기는 신기한 느낌들이 있었어요. ‘와, 역시’ 그랬죠(웃음).”

-원래 영화 쪽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요. 관심이 많지는 않았고. 그냥 영화 보는 거 너무 좋아하는 정도였죠. 단편영화 같은 건 연극하면서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참여했던 거였어요. 어쨌든 이렇게 대대적인 작업은 아가씨가 처음이니까, 모든 게 다 첫 경험이었죠. 너무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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