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노예야" 한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16-06-10 16:51
강원도로 세미나를 간 날 밤. 술을 마신 교수가 학과조교인 A씨를 밖으로 불러낸다. “너 이 새끼. 조교 주제에 교수를 떼놓고 버스를 출발시켜?” 출발시간이 40분이나 지나도록 전화조차 안 받는 교수를 두고 버스를 출발시킨 게 문제였다. 무릎 꿇고 빌라는 교수의 말을 거부하자 주먹이 날라 오고 폭행이 시작된다. A씨의 앞니까지 부러졌다.



발표회 후 뒤풀이 자리. 지도교수는 대학원에 갓 입학한 신입생 B씨는 옆자리에 앉혀 놓고 어깨를 껴안고 볼을 쓰다듬고 일으켜 세워 춤을 춘다. 자리에 같이 한 대학원생들은 하나같이 딴청이다. 대학원을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다.



지금 대학원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교수들의 폭행과 갑질, 성희롱, 논문 가로채기와 대필, 연구비 비리, 연구실 군기 등 대학원 내부의 문제를 고발하는 책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북에디션)이 출간됐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고대원총)가 기획하고 전국 대학원생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11편의 웹툰이 책에 수록됐다. 지난해 11월부터 고대원총 홈페이지와 네이버에 연재돼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우리가 학생인 줄 알아? 착각하지 마. 우린 노예야.”

“원래 이런 것이냐고 물었다. 원래 이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5년 동안 갈아 넣은 청춘이 백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십 년 동안 논문을 54편이나 대필해줬다는 것. 그 과정에서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문드러졌을지….”



한 편 한 편이 충격적이다. 이런 얘기들이 그동안 감춰져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만화니까 좀 과장되지 않았을까?

고대원총 학술국장 염동규씨는 서문에서 “안타깝게도 이 웹툰에 그려진 이야기들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라며 “지금도 많은 대학원생이 만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을 아무런 말없이 참고 있다”고 밝혔다. 염씨는 또 “많은 사람이 대학원 사회에 문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대학원 사회의 실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웹툰을 제작하고 책으로까지 엮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