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는 어른 위한 곳” 퇴사학교를 찾아가보니

입력 2016-06-11 00:07

오혜성(가명·27·여)씨는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페이스북 글들을 훑어보다 ‘퇴사학교’란 단어를 알게 됐다. 퇴사와 학교, 두 글자의 조합이 마음에 들었다. 오씨는 4년 동안 열심히 직장에 다니며 늘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사표’가 떠올랐다. 당장 회사를 나가고 싶지만, 막막하고 두려워 생각에만 그쳤다. 퇴사학교를 발견한 순간 ‘어쩌면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든다면 스타트업 하지마세요. 쉬지 않고 일만 하면서 10개월을 보냈는데 그동안 대표인 내 월급은 75만원이었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퇴사학교의 ‘퇴사 후 스타트업 창업하기’ 수업을 들으러간 오씨는 예상치 못한 강사의 돌직구에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로 창업을 해볼까 생각하며 찾아온 곳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사람들도 같은 마음인지 수업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당황스러웠지만 현실적인 조언에 오히려 퇴사 결심을 굳혔다. 대신 관련 스타트업이나 비슷한 업종으로 이직해 직무경험을 쌓고 충분히 준비한 뒤 나가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난달 11일 문을 연 퇴사학교는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는 준비를 하는 곳이다. 개교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230여명이 이곳에서 수업을 들었다. 사람들이 넋두리처럼 막연하게 이야기하는 ‘꿈’들이 모두 수업 주제다. ‘퇴사 후, 여행 누구나 여행작가’ ‘덕업일치! 좋아하는 맥주로 먹고 살기’ ‘가장 솔직한 카페창업과 운영, 인테리어 이야기’ 등이 주제다. 강사는 모두 퇴사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들이다. 퇴사학교 교장인 장수한(31)씨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삼성전자를 나왔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퇴사학교가 무작정 퇴사를 권하는 건 아니다. 이곳을 만든 장씨는 10일 “퇴사학교는 퇴사를 권장하는 곳이 아닌 퇴사를 화두로 던지며 우리의 일과 삶에 대해 고민해보는 곳”이라며 “꿈을 찾는 어른들을 위한 학교”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신입사원 4명 중 1명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사 이유의 절반 가까이(49.1%)는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을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입사하고, 이후엔 삶과 일의 불분명한 경계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입사 이후 1년을 견뎠다고 해서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 퇴사학교를 찾는 이들의 연차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건 입사 4~5년차다.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현재 회사에서 5년, 10년 뒤 롤 모델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입사 초기엔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벅차 생각할 겨를 없이 일을 해왔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며 “옆 자리 상사를 보니 회사에서 내 미래가 어떨지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퇴사학개론’을 강의하는 장씨는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는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발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무기’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