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결정해야 했다. 내가 책임지겠다” 임종룡, 서별관회의 책임론 정면돌파 시도

입력 2016-06-09 00:05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안방안 합동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합동브리핑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임 금융위원장,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했다. 서영희기자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을 금융위와 제가 했습니다. 실제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8일 정부의 구조조정 대책을 설명하면서 정부 책임론을 정면돌파하겠다고 천명했다.

논란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날 정부의 구조조정 대책은 한은을 중심으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고, 대신 혜택을 받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는 임금 동결과 인력 감축을 요구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산은과 수은 같은 국책은행이 이미 부실이 예고된 대우조선해양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도록 한 것은 정부인데, 왜 한은과 국책은행이 책임을 지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했다.

2013년 4월 7일 홍기택 산업은행 금융지주 회장 겸 산은행장 내정자가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기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국민일보 자료사진
여기에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폭로가 불을 질렀다. 홍 전 행장이 청와대 별관에서 열리는 이른바 서별관회의에서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산업은행의 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강요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부총재로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홍 전 행장은 이날 아침 보도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임 위원장이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투입을 결정하고 산업은행은 이를 실행하는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게 투며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채권단에 전적으로 맡겨줬어야 했다”며 “당국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면서도 말로 지시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를 확인하고 장기미회수채권 1조원을 부실처리 하지 않은 이유를 회계법인에게 물었더니 대우조선이 받을 수 있다고 소명했는데 왜 관여하느냐고 반문했다며 대주주인 산은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 브리핑에서도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임 위원장은 금융위 기자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서별관회의는 부처간 이견이 있는 문제들을 모아 장관들이 공식 회의 전에 조율하는 자리에 불과했다.”면서 “장관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협의하는 일은 늘 있는 일”이고 “서별관(에서 모이는)회의는 1997년부터 있었다”고 항변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쇼. 그게 정부 청사에서 했다고 하면 아무 문제 없었고, 서별관이라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전화로 회의해서 상의했다고 하면 그건 문제가 안되고, 모여서 매번 하는 회의니까 그것을 비공식으로 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최종 결과물을 이뤄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과정 자체를 자꾸 문제삼으실 게 아니라, 과정 자체는 현실적으로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실무자들이 협의해도 안되는 걸 최종 멤버들이 모여서 결정하자, 시간 제한없이 충분히 토의해보자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밀실에 의한, 정치적인 개념까지 도입해서 평가하는데 그런 과정으로 이해하시면 공식적인 회의 이외에 장관들이 모여서 논의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 이견이 걸러지고 모아지고 공식 회의체서 결론 내도록 하는게 자연스럽고 필요한 과정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 건물. 초대형건물이 즐비한 여의도에서도 압도적인 규모다.

대우조선 부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임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우조선 자금이 4조2000억원 정도 모자르다고 했는데,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해 의견 충돌이 있었다. 서로 합의를 못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기업 자금부족은 다가오는데 정상화가 더 어려워질 상황이었다”고 떠올리면서 “그럼 누가 나서서 책임감 가지고 조정 해주나. 구주조정은 손실의 분담이다. 법정관리에 가면 법원이 하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을 금융위와 제가 했고, 실제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노력은 누군가는 책임감 있게 안 하면 구조조정은 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그 역할을 제가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조정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책임질 일이 생기면 저는 책임을 질 겁니다. 누군가 나서서 책임을 조정해야 한다면 해야하는게 구조조정의 과정입니다.”

임 위원장은 홍 전 행장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임 위원장은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간 입장 차이가 있어서 서별관회의 이전에 합의가 안 되는 부분을 금융 당국으로서 조정을 한 것”이라며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감독 기관으로서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업과 해운업을 가장 잘 아는 산은, 수은 이 은행의 의견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존중해왔고 긴밀히 협의해왔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산은이나 수은 입장에서는 달리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검찰 부패범죄수사단은 이날 대우조선해양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대우조선의 부실을 숨기고 비호하고 키운 당자사를 찾아 책임을 묻는 것이 검찰의 역할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최대한 신속히, 집중해서 수사해 성과를 내라”고 지시했다.

 홍 전 행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산은 계열사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청와대 몫이 3분의1, 금융당국이 3분의1, 산은 몫이 3분의1”이라고 밝혔다. 산은은 인력감축과 임금동결을 요구 받고, 금융당국 수장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천명했지만, 청와대 관련 인사는 이날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