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화가 오만철 티월드 특별초대전 ‘흙질, 붓질, 불질’ 도자같은 그림, 그림같은 도자

입력 2016-06-08 17:25
반추(反芻)Ⅰ 171×64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5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강남 코엑스 국보·보물 ‘반추(反芻)’ 시리즈 등 출품

‘도자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오만철(53) 작가가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14회 티월드(국제 차문화대전) 특별 초대작가로 선정돼 작품을 선보인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이지만 한지에 그린 게 아니라 가마에 불을 때고 도자기로 구워져 나온 그림이다.
전시 타이틀은 ‘흙질, 붓질, 불질!!!’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도자화는 화병, 항아리, 접시 등 장식용과 관상용으로 단순한 문양이었다. 하지만 오만철 작가의 도자회화는 화선지나 캔버스 대신 평면 흙 판에 붓으로 그림을 그린 뒤 구워낸 것으로 백자 위에 청화, 철화, 진사안료로 전통 수묵화의 기품을 재현한 것이다.
눈덮인 장독대 38×57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6

일반 도자기가 1250도에서 초벌과 재벌 삼벌을 거쳐 구워진다면 그의 도자회화는 1300도의 고온을 견디고 나온 작품이다. 자칫 잘못하면 어그러지기 쉽고 그런 만큼 힘든 작업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도예와 고미술감정을 전공한 작가는 진한 묵향이 좋아 동양화에 빠지고 흙의 촉감을 사랑해 도자기를 굽는 일에 빠져들었다.
그의 작품은 도전과 실험정신의 산물이다. 캔버스가 되어줄 백자도판을 만들고 전통 안료인 철화, 청화를 사용하여 문인화와 산수화를 중심으로 농담 및 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도자회화를 탄생시켰다. 조선시대 화가들과 도공들의 합작품인 ‘도자화’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되살렸다.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으로 승화시켰다.
반추(反芻)-주병 38×57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6

그가 도자회화에 몰두하게 된 것은 단국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던 중 중국 징더전(경덕진) 출신 유학생으로부터 현지도자기 공장을 소개받은 게 계기가 됐다. 양쯔강 동남쪽에 위치한 징더전은 천혜의 도자 원료 산지로 꼽힌다. 한나라 때부터 도자기를 구웠고 송나라 이후 중국 도자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게 했다.
토질이 곱고 깨끗하여 고온에 잘 견디는 고령토와 유리성 장석으로 고령토와 섞었을 때 반투명성을 높여주는 자토는 세계적인 특산이어서 중국 정부가 국외반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을 정도다. 작가는 징더전의 공장에 몇 달씩 머물며 전 세계에서 몰려온 도예가들과 어울려 작업하면서 의욕을 불태웠다. 그 결과 색다른 경지에 다다르게 됐다.

화선지에도 구현하기 힘든 농담과 번짐, 스며듦 등 수묵담채화 특유의 발묵효과를 도자화에 살려내기까지 20여년 동안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안한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자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도자화 장르를 개척한 공로로 지난해 12월 16일 한국신지식인협회의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작가는 “나는 미치도록 행복하다”고 토로한다. 도자화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그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반 백년을 살아왔고 앞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도공과 화공이라는 1인2역을 맡아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미적 가치인 한국화와 도자기를 작업 화두로 삼아야하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주시(注視) 38×57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6

만들고 그리고 불을 지피면서 철화자기의 모든 부분들이 수묵화의 번짐과 농담처럼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다시없을 삶의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화와 도자기는 천생연분의 궁합으로 가장 한국적인 미의 가치를 구현해 왔어요. 조선시대 관요에서 도공들이 만들어놓은 도자기에 도화서의 화가들이 길일을 잡아 관요에 가서 그린 도자기들이 지금껏 국보나 보물 명품들로 많이 남아있듯이 도자화는 작품의 영구성이 뛰어 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국보, 보물, 명품인 호, 주병, 다완 등을 모팅브로 삼은 ‘반추(反芻)’ 시리즈의 신작이다. 우리 전통의 가치를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그림 같은 도자, 도자 같은 그림들이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