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 39.연출가 박근형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린다

입력 2016-06-08 09:12
화장(化粧)기 없는 박근형 연극



박근형 연극은 치장(治粧)이 없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다. 무대도 단순하고 극중 구조도 다이어트 된다. 그의 무대는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으로 버틴다. 간소한 대소도구들은 연극을 형상화하는 구조물을 이루면서 소박하게 건축된다. 박근형의 연극은 배우들의 날 것 들이 재료가 되고 생명력 있는 리얼리티로 채워지면서 비로소 박근형 연극은 well-made가 된다. 무대에서 화장하는 기술이 없는 박근형은 말을 숨기는 법이 없다. 때로는 씻지 않은 채로 찬물로 얼굴을 쓰윽 씻고, 머리는 선풍이 앞에서 두 손으로 툭툭 털면서 말리는 식이다. 진실성은 화장을 하지 않는 얼굴에서 들어난다.



가면으로 이야기를 숨기는 법이 없다. 작가의 시선과 연출의 소리를 연극적인 기술로 치장을 하거나 극중 장면으로 숨기고, 배우들의 연기로 서사를 확장하고 능숙한 무대 기술력으로 무장하지 않는다. 자연으로 건조시킨 박근형 인간내면의 심연은 거칠고 투박하고 현실이 더 부조리하지만 담아내는 현실풍경과 소리는 칼날이 서 있다. 남루하고 비루한 인생의 속살들 일수록 연극적인 화장을 하지 않고 바라본다. 배우들의 즉흥적 놀이성은 박근형의 시선을 강하게 담고 극단 골목길의 특유한 화장법으로 현실을 강타하고 소리의 볼륨을 높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현실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투박하고 거칠고 연극적인 질서가 없는듯해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투박함이 질서이고 삐뚤 한 것이 진실의 온기다.

박근형은 날것으로 올리고 세워진 연극건축물 마당에 깊은 내면의 우물을 설치한다. 집은 외소 하지만 깊은 우물에서 담아내고 올려지는 물은 그가 삶과 현실을 바라보는 순水다. 물의 잔잔한 파열음은 세련되지 않고 투박함으로 현실의 풍경을 담고 그려낸다. 현실 바닥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부딪치고 튀어 오르면서 연극은 속도를 낸다. 박근형 스러움의 비약과 풍자, 때로는 부조리한 초현실적인 삶과 세계를 들고 현실을 두드리는 연극 들을 쏟아내면서 관객은 갈증으로 메말라 있고, 두려움으로 숨겨져 있는 내면에 그가 연극마당 한가운데 깊게 박아놓은 우물에서 순水로 목마름을 채워간다.



박근형 연극의 볼륨과 화장법



박근형은 2013년 국립극단에서 올려진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고전 ‘개구리’에서 보여준 노무현 대통령의 풍자와 정치정국의 현상을 패러디한 것이 정치적인 예술 검열 정국의 논란 한 복판에 서 있어도 극단 골목길 배우들과 박근형은 오로지 연극으로 볼륨을 높이고, 일관된 시선을 유지한다. 1999년 청춘예찬으로 연극계의 스타가 된 박근형은 화장기 없는 연극으로 극(劇)을 품는다. 시대정신은 꿈틀대고 박근형의 내면은 시대의 저항성과 충돌하면서 독특한 연극적인 화장법을 완성한다.



배우들의 내면적인 리얼리티로 무장하고 그가 창작한 서사는 연극적인 함축성과 날카로운 비약성을 들어낸다. 남루한 삶과 인생, 전쟁과 아버지의 부재, 뒤틀린 가족사, 남루한 삶과 잔혹한 내면, 인간의 부조리와 삼류인생 등 너덜너덜 되고 남루한 현실의 이면들이 무대로 돌진해 강렬한 난투극을 펼친다. 박근형의 저항적 내면성에서 자라나는 시선의 틈새로 바라보는 한국사회는 놀랄 것도 없는 현실세계다. 또한 굴절된 역사의 대물림 속에서 자라라는 삶의 질서고 풍경이다. 그의 연극은 화장기를 덜어내고 덜어낼수록 인간과 삶의 본질을 마주한다.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지원금 문제로 논란 한복판에 서 있어도 극단 골목길과 박근형은 오로지 연극으로 말하고, 스피커를 들고 볼륨을 높이며 일관된 시선을 유지한다. 논란 이후에도 박근형은 ‘만주전선’<2015> 에서는 친일 혼혈사회로 얼룩진 미 청산 친일(親日) 문제와 전통적 역사의 부재현상을 들어냈다. ‘엄 사장은 살아있다’<2015>는 무대를 포항의 청정해역 울릉도에 옮겨 대한민국 정치 실종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뒤틀려 있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모순과 부조리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후, 창작산실의 지원금 논란 한복판에 있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남산예술센터, 2016)로 여전히 뜨겁고 유효한 전쟁과 군인의 죽음 그리고 아직도 한국사회의 논쟁으로 치유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들고 여전히 볼룸을 높이면서 박근형은 화장기 없는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리는 박근형 연극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일명 ‘죽 밥’ 이다. 검열정국으로 그의 내면은 상처가 될 법도 한데 오히려 박근형은 연극을 들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대로 돌진한다. 설익은 ‘죽밥’이 담겨 있는 연극 밥솥에는 동시대 한복판으로 꺼내 놓을 수 있는 박근형 특유의 날선 풍자가 들어있다. 극단 골목길 배우들이 똘똘 뭉쳐서 깊은 숨으로 일으켜 세운 풍선에 색깔을 칠하고 박근형의 시선을 담아서 무대를 향해 터트린다. 막장까지 달려간 가족들, 뒤틀린 역사성, 전쟁과 아버지의 부재, 역사의 부채와 현실정치현상, 그리고 현재 우리 동시대의 삶의 온도와 체온을 그만의 방식대로 담아낸다.



박근형 연출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게릴라 극장·5월18일부터 5월29일까지) 을 들고 달려간 곳은 폐허가 된 극장이다. 극장은 연극이 숨을 쉬고 다양한 소리들이 섞이면서 투영 됐을 때 살아있는 극장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 박근형 연출이 극단 골목길 배우들을 끌고 떠난 순례길은 연극을 할 수 없는 불 꺼진 폐허가 된 극장이다. 마지막 극중 장면에서 아버지(김정호 분) 대사는 “예술은 이시대의 종양이다! 자, 가자 광장으로!”라고 한다. 종양(腫瘍)이 연극예술 세포에 전의되면 연극이 건강함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도 죽어 있는 것이다. 검열정국으로 내면은 상처가 되어도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소신의 소리를 높이고 연극이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시대야 말로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시간을 생산해 내는 곳”이 되는 것이다. 박근형은 알만한 가족들을 데리고 소멸되지 않는 불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폐허의 극장으로 달려간다.



무대는 연극으로 사용하다 버려진 간소한 소품들이 무대에 어지럽게 놓여있다. 일순간 ‘샌프란시스코 베이’ 하모니카 간주곡이 무대로 스며들면 가족들은 배낭을 메고 허기진 태도로 일순간 무대로 들이 닥친다. 아버지는 만주벌판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살아남은 불멸의 아버지다. 이들이 극장 체험 이전 순례는 탄광체험 이였다. 아버지 김정호가 어머니 모성애가 부재한 1남2녀의 가족을 이끌고 삶의 체험 현장을 떠나는 순례는 그가 걸어왔던 삶의 현장이다. 아버지에게 60년대는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강인한 정신력 하나로 새마을 정신으로 무장하고 다 같이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강인하게 달려온 인생의 길이다. ‘죽밥’을 들고 이들 가족들의 체험 현장 순례의 통로는 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고 80년대 조용필 시대를 넘어 오늘날 검열정국으로 폐허가 된 연극극장 현장을 연극 만들기로 체험하는 일이다. 연출은 소멸의 연극이 아닌 시대를 향한 불멸의 연극으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명력의 온기를 놓는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고 배는 쫄쫄이 굶으면서도 버텨낸다. 도착한 극장 에서 여장을 푸는데도 주어진 시간은 5분이다. 1남 2녀의 자식들(큰딸 강지은, 둘째 심재현, 막내 오순태·연극에서도 배우들의 실명이 그대로 극중 인물로 처리 됨)은 아버지(김정호 분)에게 우는 소리로 10분을 더 달라고 애원해도 자식들을 위한 소통과 타협은 없다. 무조건 복종하고 아버지의 권위에 존전하지 않는 체험현장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머나먼 타향 만주벌판에서 일본 동료들에게 이지메를 피눈물로 극복하고 강인한 정신력 하나로 살아남아 막판에는 유도정신으로 무장한다. 경호 수행원은(이은우 분)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강인한 정신력을 유지한다.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도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이들에게 배고픔과 살아가는 문제는 경제문제도 아니고 삶의 방식도 아니다. 오로지 아버지의 강인한 정신력을 뼈 속 깊이 체득하지 못한 탓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현장체험을 선택한 곳은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박근형 연출의 논란이 된 작품이 자의식이 된 내면세계다. 2013년도 연극의 재 패러디를 통해 ‘불멸의 시간으로 소멸되는 않은 연극이야 말로 종양 얻고 병치레를 하지 않는 연극’이다.



큰딸은 아버지의 뼈 속 까지 닮아 있다. 큰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변화무쌍한 혼돈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정신세계를 가족들이 이어받는 것이다. 두 사람은 “나는 너나! 너는 나다!”를 외치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뼈 속 까지 닮아있다. 아버지는 갑자기 80년대 조용필의 향수에 젖는다. 연출은 1985년 발표 된 조용필 노래 ‘어제 오늘, 그리고’로 연결하면서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나약한 막내아들을 80년대 대마초 사건을 연상시키듯 장면을 희극적으로 투영하면서 이름표를 부착한다.



막내는 아버지에게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고 취중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 밥을 먹고 싶은 희망사항을 꺼내든다. 가족들의 금기인 어머니의 부재를 꺼내들면서 박근형 연출은 소극 상황들을 열어놓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유도대결로 이어지면서 아버지의 청년시절의 역사를 틈에 부착한다. 유도복은 인생의 훈장이다. 이 가족들이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해도 ‘연극정신’은 부재하다.



일순간 무대는 햄릿의 극중극으로 전환되고 막내아들은 선왕의 망령이 되어 죽음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밀짚모자를 쓴 선왕이 등장하면서 자신을 죽인 독사가 그 왕관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서 새벽길 산책을 나갔다가 발을 헛디뎌서 죽은 게 아니고 누군가 밀쳐서 바위에서 떨어졌다고 말한다. 마치 논란이 된 소재를 재구성하면서 웃음으로 몰아넣는다.



큰딸은 “예술을 빙자해 셰익스피어에 얹혀서 사실을 미화하고, 과거를 왜곡해 작가는 햄릿을 똥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대본에 나오는 햄릿의 선왕은 바위에서 죽은 게 아니고 독사나, 전갈에게 물려죽었다”고 말하면서 선왕 죽음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는 것은 원작과 다르고, 작가가 불순한 의도도 작품을 썼다고 맹비난 한다. 마치, 검열논란으로 축발된 시간을 재구성 하면서 마치 검열정국으로 이어졌던 당시 박근형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교차된다. 어차피 왕은 죽었기 때문에 연극적인 장소이동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는 쪽과 사소한 사실 하나가 역사가 될 수 있다는 큰딸의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과거를 토대로 하는 역사극을 만든다.



이 가족들이 들고 나온 극중극은 사이언스픽션! SF 역사극이다. 때는 9791년 광활한 우주의 서라벌 왕국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우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광활한 우주인의 말로 무대를 흔들며 배우들은 유쾌한 속도전으로 극중 장면을 구성한다. 시녀 치마폭에 쌓여 국정을 멀리하게 된 왕, 역병으로 아이들이 죽어가 민심은 국왕으로 멀어지고, 백성과 신하들은 분노하는 장면들이 특유의 소극적 극중극으로 재현되면서 왕과 신하들이 빠른 속도로 섞여 지고 총소리가 울린다.



무대 뒤쪽으로 병풍이 들어서고 10·26의 재현성들이 놀이로 펼쳐진다. 총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왕. 이윽고 큰딸은 “아버지 쓰러지면 안돼요! 아버지는 국왕 이예요! 국왕은 절대 쓰러지지 않아요. 힘내세요!”를 외치고 불멸의 아버지는 총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채 반란군을 제압하고 왕위를 딸에게 물려주고 평화로운 여생을 보낸 것으로 극중극은 설정된다. 아버지는 “나도 죽을 때도 있겠지. 언젠가는 사람들이 날 기억에서 지울 거다.”라는 말에 큰딸은 “아버지는 절대 죽지 않아요.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저희를 믿어주세요 한다.” 큰딸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죽어도 죽을 수 없는 불멸의 존재다. 이들이 또 다른 삶의 체험 현장은 광장이다. 아버지는 휘발유로 극장에 불을 지르고 둘째딸 재현은 “왜 불을 질러요? 연극은 소멸되지만 불멸하는 시간을 사는 것이라면서요.” 이 말에 아버지는“ 그러니까 소멸시켜야지! 예술은 이 시대의 종양이다!”로 응답한다.



박근형에게 연극은 불멸의 아버지처럼, 소멸되어도 죽지 않은 채 여전히 극장에 불을 밝히고 연극으로 볼륨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연극으로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현실만이 폐허가 된 극장에 온기를 올릴 수 있는 불멸의 연극이다. 그것은 연극이 종양에 걸려 세포와 피부가 괴사 되지 않고 살아 있을 때 새살이 돋고 소멸되지 않는 불멸의 연극이 될 수 있다. 김정호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극의 웃음 온도를 크게 상승시켰고, 강지은, 김은우, 오순태, 심재현도 박근형의 신작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을 따끈한 쌀밥으로 극의 균형을 밀도 있게 잡아냈다. 여전히 박근형 연극은 투박하고 거칠어도 그게 맛이다.



연극과 표현의 재료



연극표현의 재료를 들고 무대에 밥상을 차리는 것은 다르다. 때로는 김치 하나만 놓고 이야기를 만들고, 정갈한 정식도 올라갈 수 있다. 연극 재료의 찬은 다 다르고 사용방법도 연극의 특성과 연출가들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연극이다. 그 다름의 재료가 융합되고 섞여졌을 때 맛과 연극의 향도 달라진다. 연극 표현 방식도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다른 맛이 될 수 있다. 찍어내듯이 포장용기와 일정한 맛의 비율로 섞인 것은 급한 허기만 채울 수 있는 것은 인스턴트 식품이다. ‘개구리’ 논란이후 일각에서는 박근형 스러움의 풍자 혹은, 다양한 재료들을 들고 표현될 수 있는 자유로운 예술성이 공존하는 연극에서 웃고 넘어갈 풍자가 너무 확대된 채 검열논란으로 이어졌고, 논란의 불씨가 도전적인 저항처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풍자극 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여전히 이 문제가 대학로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다. 검열정국은 그 이후에 좀 느슨해 진 것 같은데 신인 연출가와 일부 중견 연출들은 앞으로 5개월 동안 검열에 관한 21개의 이야기 <2016 권리장전 검열각하>라는 제목을 들고 검열정국에 저항하고 예술의 자유성을 외친다. 김재엽, 김수정, 부새롬, 윤혜숙 등의 연출가들이 각 극단과 배우들을 이끌고 릴레이공연 (6월9일~10월30일까지)을 이어간다. 76극단 40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린 이번 ‘죽밥’<죽이 되는, 밥이 되든>은 7월27일부터 8월7일 까지 열리는 국내 최대 연극축제인 ‘제16회 밀양여름 공연예술축제’에서 공연된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