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아르코 호텔 아레나에서 열린 ‘KCON2016프랑스’ 행사에서 통역자로 일했다는 김 모 씨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오는데 나는 왜 예뻐야 하나"라며 행사 내용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씨는 “이번 행사에 필요한 여러 자리(한복모델, 행사도우미, 통역담당 등)는 대부분이 현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로 꾸며졌다. 하지만 받은 자료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며 “용모단정, 예쁜 분이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통역 등은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언어가 1순위일텐데 프랑스에 살면서 이렇게 채용기준에 "예쁜 분"이라는 천박하고 성차별적인 단어를 노골적으로 명시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지적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KCON2016프랑스’ 행사 계획표를 보면 CJ E&M측과 계약한 현지 에이전시는 통역자, 모델, 행사진행자 채용 기준으로 ‘용모 중요, 예쁜 분’이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해당 문구는 에이전시가 합격자에게 보낸 공지에 표기됐다. ‘용모중요’ ‘예쁜 분’은 한식업체 ‘비비고’ 항목에 빨간색으로 강조됐다고 전했다.
또한 현지 에이전시의 공고문에는 한복 착용을 위해 남자는 키 183cm 내외, 여자는 167cm 내외의 호감형 외모의 인물을 구한다고 공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채용공고는 CJ E&M측과 계약한 에이전시에서 맡았다”면서 “공고문 내용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페이스북에 게재한 자료에는 항목마다 '용모 중요'가 작성돼 있다. 붉은 글씨로 ‘예쁜 분'이라고 강조 표기된 부분도 있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행사에 참석한 ‘걸그룹’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CJ와 유네스코가 함께하는 소녀 교육 캠페인 'Better for girls' 포토존이 설치돼 있는 곳에 걸그룹 아이오아이(IOI)가 왔다"고 전했다.
김 씨는 IOI에 대해 “정말, 아기들이었다. 옷 자체도 교복이었다. IOI 분들이 피곤해 보이길래 언제 파리에 왔냐고 물었더니 행사전날 밤에 도착해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몇 시간째 혹사당하고 있었다”며 “끊임없이 애교와 웃음을 강요당하고 있는 모습과 뒷 배경에 쓰여 있는 'Better life for girls' 캠페인의 타이틀이 모순적이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행사장에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을 수행하는 사람들, 경재계 인사들, 기타 고위층으로 구성된 무리에서 여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이라곤 IOI, 그리고 저희 같은 부스에서 통역이나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뿐이었다”며 “아직도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권력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배제 당하는데 무슨 역차별을 운운하고 여성 할당제가 불공정하다는 *소리를 하는가. 도술을 가지고 '헬조선'을 개혁 못해 율도국을 세워 떠난 홍길동의 심정이 이것이었을까”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이번 미션(행사)을 위해 받은 메일에 누군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주시길 바란다’라고 적어놓았다. 애국심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가 스스로 만드는 국격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다”고 말했다.
해당 글은 7일까지 2만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했고 5,700회 이상 공유됐다.
이 글을 본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의견이 엇갈렸다. 이 글에 공감하는 네티즌들은 “불행하게도 외모를 경쟁력으로 여기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솔직하고 따가운 글이다” “부끄럽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남성으로서 부끄럽다” “개념있는 여성분의 개념글” “구구절절하게 옳은 말이다” “좋은 글과 용기, 고맙다”며 호응했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뽑을 때 외모가 고려되어야 하는 상황도 있는 건 분명하다” “IOI는 본인들이 선택한 자리에서 그 시선들과 환호성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너무나도 부정적으로 가득찬 글이다” “예쁜 분이 차별이면 얼굴 차별이지 왜 성차별이냐”고 말했다.
김 씨는 “이 글이 분명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이유없는 피해가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누구나 하고싶은 말을 할 자격이 있고 그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이 글을 삭제하지 않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케이팝(K-Pop) 콘서트를 관람하며 한류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케이콘 행사는 박 대통령의 국빈방문과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양국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특별주간' 행사의 일환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