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연극계 최고 화제작을 꼽으라면 단연 연출가 이해랑(1916∼89)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인 ‘햄릿’(7월 12일∼8월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일 것이다. 국립극장과 신시컴퍼니가 공동 제작하는 이 작품에 권성덕(75) 전무송(75) 박정자(74) 손숙(72) 정동환(67) 김성녀(66) 유인촌(65) 윤석화(60) 손봉숙(60) 등 거물배우 9명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평균 나이 68세인 이들을 한 무대에서 보는 것 자체가 한국 연극계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기에 연출가 손진책,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도 가세했다.
9명의 배우들 가운데 ‘햄릿’의 타이틀롤을 맡은 유인촌은 출연하는 감회가 다른 배우들보다 남다르다. 햄릿 역을 무려 6번째 연기하게 된 그는 89년 이해랑 선생의 유작이 된 ‘햄릿’ 공연에서도 주역을 맡았었기 때문이다.
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러시아 음악극 ‘홀스또메르’와 함께 내 스스로도 간판 레퍼토리로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에 햄릿을 다시 연기하는 것은 많이 망설였다. 나를 포함해 나이든 배우들만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게 자칫 관객들 눈에 웃기게 비춰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솔직히 출연 배우들에겐 본전 찾기 힘든 공연이다”고 말했다.
71년 배우로 데뷔한 그는 ‘햄릿’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81년 극단 현대극장에서 표재순이 연출한 ‘햄릿’을 시작으로 85년과 89년 호암아트홀에서 이해랑 연출, 93년 극단 자유에서 김정옥 연출, 99년 유씨어터에서 김아라 연출로 햄릿을 연기한 바 있다. 그의 석사 논문 주제 역시 햄릿이었다. 2005년 자신의 극단인 유씨어터 10주년 기념공연으로도 ‘햄릿’을 올리려고 하다가 배우 캐스팅이 여의치 않아 ‘홀스또메르’로 바꿨을 정도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에 둘러싸인 인간의 비극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는 그는 “특히 햄릿이란 인물은 왕자, 군인, 철학자, 시인 등 한 인물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성향을 내포하고 있어서 배우라면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원한 햄릿’으로 불린 고 김동원(1916~2006) 선생님이 당신이 ‘햄릿’에 출연할 때 착용하시던 벨트를 내게 주셨다. ‘내 이후의 햄릿은 너’라며 벨트를 건네 주셨을 때 배우로서 정말 기뻤다”며 “2005년 ‘햄릿’을 마지막으로 올린 뒤 햄릿 역과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여건이 안돼 ‘햄릿’을 올리지 못한 게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렇게 나이 들어서 하게 됐다”고 웃었다.
그는 사실주의 연극의 신봉자였던 이해랑 선생에 대한 추억도 꺼내놓았다. “70~80년대 한국 연극계에서 부조리극이나 실험극이 한창 유행할 때였지만 이해랑 선생님은 사실주의 연극에 충실하셨다. 배우의 내면 연기를 중시하는 선생님은 무대에서 ‘오버’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고 회고한 그는 “선생님의 유작이 된 89년 ‘햄릿’에 원래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당시 이런저런 상황으로 ‘햄릿’ 공연이 급하게 결정됐었는데, 선생님께서 연습기간도 짧고 하니 85년 ‘햄릿’에 함께 했던 나를 캐스팅 하려고 찾아오셨다. 당시 TV 드라마를 동시에 2~3개 할 때라 연극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거절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자리를 뜨려는 참에 선생님께서 ‘이게 나한테 마지막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연세가 있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마지막 연출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드라마와 병행해 연극 연습에 유동적으로 참여하기로 양해를 구하고 출연하게 됐는데, 선생님께서 개막 1주일 전에 돌아가셨다. 그때 ‘햄릿’에 출연하지 않았으면 평생 한이 됐을 뻔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햄릿’은 중견 작가 배삼식이 각색을 맡아 원로 배우들이 무대에서 이 작품을 연기한다는 ‘극중극’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원로배우들이 작품을 연기하면 관객들이 몰입하기 어려울 것을 감안한 조치다.
그는 “출연배우 9명이 다들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이 있어서 작품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잠깐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 다들 이렇게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연습하고 있다”면서 “전무송 정동환 선배, 윤석화 씨 등 그동안 한번도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던 배우들을 비롯해 연극계의 동지같은 선후배들과 이번에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즐거운 설렘이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인터뷰] 65세에 6번째 햄릿 연기하는 배우 유인촌 "관객 눈에 어떻게 보일까 걱정"
입력 2016-06-07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