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압박 출구전략은 어디에… ‘북한 압박’만 되뇌일건가

입력 2016-06-07 16:27

올해 상반기 한국 외교의 최대 목표였던 ‘북핵 이니셔티브’가 급격히 동력을 잃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 채택 후 100일이 다가오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등 한반도 문제가 미·중 갈등의 ‘종속 변수’로 전락하는 움직임까지 뚜렷해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사회 ‘대북 압박’ 주도했지만… 미·중 갈등 ‘새 변수’=올해 상반기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는 사실상 한국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앞장서 ‘결기’를 보이면 국제사회가 동조하는 형태였다. 정부는 지난 2월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개성공단 내 우리은행 지점이 함께 폐쇄되면서 안보리 결의 2270호의 금융 제재 조치가 의무 조항으로 격상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결의 채택 90일이 지나고 각국별 이행 보고서가 제출되는 등 ‘제2라운드’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갈등이 급부상했다. 미국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해 중국 금융기관까지 제재할 길을 연 데 이어 ‘북한과의 거래가 의심된다’면서 중국 IT기업 화웨이에 칼을 뽑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와 남중국해 문제 등을 놓고도 다시 충돌했다.

◇북·중 관계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 포착=여기에 중국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안보리 결의 2094호가 채택된 후 한동안 대북 제재를 이행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고삐를 늦춘 행태를 반복할 조짐이다. 지난 1일 이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중국의 ‘셈법’이 변치 않는 이상 필연적인 행보란 얘기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7일 “중국을 에워싸려는 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서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의 갈등구조에 활용하는 지정학적 본능으로 응수했다”면서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미·중 관계의 축이 최근 갈등 국면으로 기울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강대국 사이의 패권경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저주’가 재현되지 않도록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차원적 외교방정식’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부연했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쿠바 방문과 이어질 한·러 외교장관회담 등 북한의 오랜 우방들과 관계를 개선해 고립을 더욱 심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외교적 타격이 적지 않지만 이미 북·중 관계를 개선 흐름으로 돌려놓으면서 상당 부분 만회한 셈이 됐다. 특히 한반도 사드 등 문제를 두고 한·미·일과 중국 간 갈등 구도가 형성되는 등 주변 정세 또한 북한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굳히기’ 들어간 북한… ‘출구 전략’ 필요=결과론이지만 ‘압박 일변도’로 북한과의 채널 일체를 포기한 선택 역시 일종의 자충수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시간을 우리가 아니라 북한 편으로 돌려놨기 때문이다.

북한은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자력·자강’을 경제기치로 내걸어 독재 정권의 혜택이자 장기인 버티기에 들어갔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특히 5년으로 제한된 남한 정권의 취약한 연속성을 염두에 둔 중장기 포석이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더는 잃을 것이 없어졌기에 가능한 선택이기도 하다. 군사 도발과 대화 공세를 교차하며 향후 북한이 조장할 모든 이벤트들이 북한 입장에선 성과로 치환되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문제”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새로운 미국 정부가 들고 나올 한반도 전략은 ‘미지수’고 대선 국면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추진력 상실은 ‘상수’에 가깝다. 최경희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연이은 생산전투로 고립 국면을 체제 공고화에 활용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대남 전략은 선거를 앞두고 국론이 분열하는 내년을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북 압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고려할 때, 유연한 출구 전략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내실 있게 마무리할 ‘끝내기’ 국면은 바로 지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건희 조성은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