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세월, '흙수저'에서 인기작가로 거듭난 문형태 ‘생각하는 잠수함’ 개인전

입력 2016-06-07 14:54 수정 2016-06-08 17:56
-6월 18일까지 진화랑
 자신과 세상에 털어놓는 이야기 담은 60여점 전시

문형태 작가 Magician(oil on canvas 162.2x130.3cm 2016)

10년의 세월. 돌아보면 아스라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인간이야 오죽하랴. 화랑가에서 전시 섭외 1순위로 꼽히는 문형태(40) 작가의 궤적이 그렇다. 10년 전 지방대를 나와 서울로 올라온 후 홍대 놀이터 앞에서 직접 디자인한 액세서리를 팔던 청년이었다. 이제는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스타작가가 됐다. 비닐하우스를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던 시절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경기도 양평의 번듯한 작업공간에서 붓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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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태 작가가 5월 28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생각하는 잠수함’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작업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째를 맞이하는 기념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100호(162.2㎝×130.3㎝)짜리 대형 작품 ‘마술사’(Magician)를 비롯해 회화, 드로잉, 오브제 등 60여점을 선보인다. 절반가량이 신작이다. 오픈 며칠 만에 벌써 다수의 작품이 팔려나갔다. ‘완판’(솔드아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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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전시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시선을 얘기했다면 이번 전시는 작가 문형태가 자신과 세상에 속내를 털어놓는 전시다.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은 별로 알지도 못하고 작업실에 박혀 하얀 캔버스 앞에서 무수한 밤을 지새우던 그가 아니던가. 세상과의 교감을 통해 얻었던 감정들을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피에로가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을 소소하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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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림으로 먹고살지 못할까 봐 홍대에서 장사도 했는데
요즘 말로 얘기하자면 ‘흙수저’라 일컫는다. 그림이 잘 팔린 덕분에 부모님을 보살필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사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작업공간은 바뀌었지만 온종일 작업실에 갇혀서 그림만 그리는 것은 마찬가지거든요. 전시회 제목처럼 작업실은 마치 잠수함 같아서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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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재나 작업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인간군상을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형태로 풀어내면서도 붉고 푸른색을 섞어 강렬함을 살려내는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황토를 섞은 물을 캔버스에 바른 다음 흙물이 스며든 캔버스에 붓질을 하는 기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품 분위기는 바뀌었다. 어렵던 시절에는 그림이 다소 어두웠는데 지금은 밝고 어둠이 공존한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한다.

가까이읽는책

“자신이 상업적인 작가로 보이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 작업이 상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런 류가 판매가 잘 될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작품이 잘 팔린다는 것보다 작업을 보는 분들이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할 때가 더 기뻤다”고 털어놨다. 그게 그에게는 흥분과 감동을 주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는 게 진정한 창조이고 그게 예술가의 역할이 아닐까.
문형태 작가는 갑작스런 인기가 다소 당황스러운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제 그림이 귀엽거나 예쁜 것만도 아니고 그로테스크한 측면도 있는데 이런 반응을 얻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림 속 캐릭터가 액자 밖으로 걸어 나온 것 같은 오브제는 택배박스로 만든 것들이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34번 이사를 다닌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집이란 머무는 곳이 아니라 탔다 내리는 자동차와 같은 거죠. 택배박스로 오브제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작가는 스스로를 구시대적 작가라고 표현한다. 외부 평가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혼자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는 쫓겨서 작업을 했는데 10년째 하다보니 계획을 세워서 작업하지 않고 그냥 오늘 하루 또 붓질하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라고 했다. 9월에는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그는 바쁘다. 바쁘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 혈기왕성한 젊음이 있기에.


하지만 너무 잦은 전시로 자신을 과소비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시쳇말로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화랑의 요구나 주문에 휘둘리게 되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그림 그리는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각오를 들어보면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때 숨 쉬고 싶어도 숨 쉴 수 없었던 학생들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요. 아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산소 같은 게 내게는 과연 뭘까 생각했어요. 그건 가족과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일 수도 있고 유명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겠죠. 아직은 창작의 에너지가 모두 타버리는 ‘번 아웃’ 증세는 없어요. 더욱 치열하게 작업해야죠.” 전시는 6월 18일까지(02-738-7570).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