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김원주) 회원들은 지난 2일 ‘항일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 등 경남지역 성지를 순례했다(사진).
포항성시화운동본부 37명은 이날 오전 8시30분 버스 편으로 포항을 출발, 경남 창원시 웅천동로 174(남문동 841)에 위치한 소양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은 1층 전시실과 영상실, 2층 전시실과 소양홀을 갖추고 있었다.
회원들은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일부(5분 분량)와 주 목사 막내아들 故 주광조 장로의 간증집회영상(3분 분량)을 보고 전시관을 둘러봤다.
?1층 전시실(면류관)에는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 설교내용과 독립운동 당시의 현장 모형, 건국훈장과 친필편지, 서명 등이 전시돼 있었다.
1981년 웅천 기독교회 교인들의 헌금 내역을 기록한 주기철 집사(재정담당)의 친필 연보록도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당시 모습을 재현한 주기철 목사의 방이 일행을 맞았다.
현관 벽에는 지역으로 구분한 대한민국 순교자들의 사진과 이름도 전시돼 있었다.
감사함과 아픈 역사를 보는 듯해 마음이 무거웠다.
주기철 목사의 항일독립운동으로 인한 투옥과 순교와 관련한 자료, 주 목사의 기도처였던 무학산 십자바위도 모형으로 전시돼 있었고 주 목사가 사용하던 강대상, 교회당회록 등도 눈에 들어왔다.
모형으로 만든 체포, 투옥, 고문, 장례 모습을 볼 때는 주 목사의 고귀한 신앙심과 애국심을 느끼게 했다.
?포항성시화운동본부 박종규 사무부총장은 “해방이후 신사참배를 결의한 평양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갔고 순교 신앙으로 믿음을 지킨 경남은 6·25 전쟁의 초토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며 “이 자리가 6·25 전쟁 당시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삼킨 공산군과 맞서 싸운 국군의 마지막 방어선이며 수복의 발판을 놓았던 역사적인 전쟁터였다”고 설명했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 관계자는 “주기철 목사가 몸담았던 마산 문창교회,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할 때 기록했던 당회록, 선배 목사에게 보낸 편지, 평양신학교 졸업사진, 가족·교회 신도들과 찍은 사진 등과 가족들이 보관하던 유품 100점 가량을 전시하고 있다”며 “1897년 11월 2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서 태어난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신앙수호운동을 펼쳐오다 1944년 4월 21일 숱한 고문 끝에 평양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소개했다.
?일행의 발길은 가야국을 대표하는 유적지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김해박물관으로 향했다.
김해박물관을 둘러보던 일행은 박물관에 불상이 없다는 것에 놀랐고 토기와 철기유물에서 십자가의 모양을 볼 수 있어 또 한 번 놀랐다.
일행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중매로 가야 김수로왕과 인도 허황옥 공주의 결혼, 도마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고 왕 위에 오른 김수로왕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야유물을 관람했다.
?이어 김해시 서상동에 위치한 김수로 왕릉 납릉정문의 현판에 새겨진 오병이어(물고기 2마리와 떡 5개) 그림을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일행은 “리모델링 전의 그림은 실물과 같았다”는 이원호 목사의 말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일행은 “한국기독교계가 전해져 내려오는 가야국의 기독교 이야기와 가야국에 복음을 전한 도마 이야기, 김수로왕, 인도 공주 허왕후 등과 관련해 사료조사를 할 필요성이 있다”며 “공식조사를 통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행은 부산·경남지역을 5개 선교지부로 나눠 복음을 전한 호주 선교사(126명 중 8명 순교)들의 묘원과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은 다음에 경남지역 성지순례 때 찾기로 하고 포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주 선교사 묘원은 2009년 6월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제안과 운영위원회 의결(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건립 포함)로 추진, 2010년 10월 조성됐다.
포항=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포항성시화운동본부 회원들, 경남지역 성지순례 다녀왔다
입력 2016-06-07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