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의 어느 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카이와 아일랜드 골프장에서 사람 좋아 보이는 동네아저씨 차림의 그는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PGA챔피언십 시합을 위해 연습그린에 올라간 그의 눈에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들어왔다. 말도 걸지 못했다. 우즈의 캐디 조 라카바가 다가와 일주일 전 열린 PGA투어 캐나다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그를 축하해줬다. 그는 라카바에게 “사실 그때 난 하루종일 리더보드를 쳐다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평생 처음 챔피언조에서 4라운드 시합을 하는데다 다리가 떨리고 숨이 가빠져 리더보드를 보면 아예 골프채를 휘두를 수도 없을 것 같았다”고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우즈가 다가왔다. 그리곤 큰 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프로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종료 직전을 남겨 놓고 스코어보드도 안 보고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냐? 넌 정말 바보다(You're an idiot).”
그는 가슴을 쳤다. 얼마나 자신이 초라한지, 아무런 자신감도, 자기 확신도 없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가슴 속에선 뜨거운 말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 우리 모두는 똑같아. 직업 골프선수, 매주 시합에 나가 울기도 웃기도 좌절하기도 하는 사람들….’
6일 오하이오주 더블린 뮤어필드빌리지 골프장. 연두색 폴로셔츠를 입은 그는 마지막 퍼트를 홀에 넣은 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우승의 순간, 기자들과 카메라 세례, 대회 관계자들의 축하인사가 난무하는데도 그린을 떠나지 못했다. 165번째 대회 만에 차지한 첫 우승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머리엔 스무살, 아니 여섯 살 때부터 ‘천직’으로 여겼던 골프의 여정이 떠올랐을 게다.
‘우승자 윌리엄 맥거트(37·미국)!’ 대회 주최자인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가 축하악수를 하기 위해 그를 향해 걸어오는 순간, 대회장에는 그의 이름이 방송되고 있었다.
4년 전 우즈의 경멸에 가까운 조언을 들은 이후 맥거트는 시합 때마다 리더보드를 똑바로 응시했다. ‘너무 우승에 집착하지 말자’는 생각은 ‘반드시 우승하자’는 투혼으로 바뀌었다.
맥거트가 골프를 시작한 건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간 골프장에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골프는 그의 영혼을 휘어잡았다. 자기와의 싸움, 자신이 행한 샷의 결과를 전부 자기가 책임지는 세계, 누가 보지 않아도 절대 속일 수 없는 게임….
골프선수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했지만, 불행히도 맥거트에겐 탁월한 재능은 없었다. 하루 종일 땡볕에 살을 태우며 육체노동자처럼 연습하는 길만이 그의 것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워포드대학에 골프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지금의 아내 사라를 만났다. 같은 기숙사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한 사랑. 결혼을 약속했지만, 돈이 없었다. 아내의 집안에선 변변한 직업도 없고 촉망받는 골퍼의 미래도 없는 그를 싫어했다. 2004년 결혼식 일주일 전 맥거트는 프로가 됐다. 직업이 있다는 걸 장인 장모에게 보여줄 작정이었다.
결혼이후 자신을 위해 사라는 생활비를 벌고 투어비용을 줬다. 리복유통센터에서 일주일이면 60시간, 심지어 80시간 이상 일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무려 하루 12~16시간 일하는 아내를 위해 맥거트는 골프투어 시합이라면 어디든 갔다. 돈을 벌기 위한 사투였다.
그는 “미니 투어가 토요일이나 일요일 끝나면 곧바로 먼 길을 운전해 월요일 아침 예선에 참가했다. 당시 4개월 동안 아내를 단 8번 만났을 정도로 정말 바빴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고전의 연속이었다. 2009년 PGA 퀄리파잉스쿨에서 떨어졌다. 2010년 2부 투어에서 상금 순위 34위가 돼 이듬해인 2011년 PGA 투어에 진출했다. PGA 투어 시드권을 확보한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의 일을 그만 두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맥거트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12년동안 학수고대하던 우승을 차지했다. 제이슨 데이, 조던 스피스, 로리 매킬로이 등 세계랭킹 1~3위가 다 참가한 대회에서 존 커런(29)과의 연장전 끝에 우승해 153만달러(18억1450여만원)을 받은 것이다.
“드디어 드디어 해냈어.” 그는 2004년부터 자신의 캐디백을 매 왔던 캐디 브랜든 앤터스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온통 햇살이 고난을 이겨낸 맥거트를 향해 쏟아지는 듯 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너는 바보” 한 마디가 그를… ‘12년 무명’ 맥거트, 끝내 우승하다
입력 2016-06-0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