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못 믿어요” 미세먼지, 스스로 ‘행동‘ 나서는 사람들

입력 2016-06-07 00:05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김영지(32·여)씨는 지난 3일 25만원을 주고 인터넷에서 가정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주문했다. 초미세먼지(PM2.5)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농도, 온도 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기기다. 미세먼지 예보가 부정확하다는 얘기가 너무 많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날은 정부가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한 날이다.

여기에다 김씨는 간단한 요리를 할 때에도 레인지후드를 켠다. 고등어구이가 미세먼지를 유발한다는 환경부 발표를 흘려들을 수 없어서다. 김씨는 6일 “네 살이 된 딸이 있는데 어린이집 엄마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전문가 수준이 됐다”며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포비아(공포증)’가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극곰’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환경문제는 코앞의 ‘내 일’이 됐다. 정부가 내놓은 ‘특별대책’은 미덥지 않다. 불안과 우려가 깊어지자 ‘엄마’들을 중심으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 3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신모(33·여)씨는 각종 육아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미세먼지 정보를 모은다. 스마트폰에는 미세먼지 농도나 상황 등을 보여주는 국내 애플리케이션만 2개가 깔려 있다. 이마저도 불안해 중국의 실시간 대기질 인덱스 사이트(aqicn.org)나 일본 기상협회사이트(www.tenki.jp) 등에 수시로 들어가 둘러본다.

특별대책이 나온 뒤에는 관련 기사는 물론 보도자료까지 정독했다고 한다. 신씨는 “솔직히 먼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파괴된 환경이 나와 내 아이를 직접 위협한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생 박모(26)씨는 미세먼지 예보를 챙겨보지 않는다. 대신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눈이 얼마나 뻑뻑한지, 코가 답답한지 등 ‘몸의 신호’에 따라 늘 휴대하는 마스크를 꺼내 쓴다. 박씨는 “주변 사람들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 고민하다가 환경부에 규제 강화 등의 민원을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발적이고 개인적이던 행동들은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설된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라는 인터넷 카페 회원 수는 일주일 새 5600여명으로 불었다. 카페에선 미세먼지 예보사이트 이용법, 지역별 ‘셀프측정’ 자료, 하늘 사진 등이 공유되고 있다. 공기 좋은 날 창문을 열기 전에 방충망부터 닦아야 한다는 조언이나 박씨처럼 민원을 넣은 사람들의 ‘인증샷’도 올라온다. 이 카페는 이달 중순 즈음에 미세먼지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후원금 모금, 포스터 제작 등 준비작업 중이다.

환경단체 등에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김동언 환경운동연합 정책팀장은 “주부들 문의가 많고 경유차 대책과 관련한 40~50대 가장들의 항의전화도 많다”며 “미세먼지가 건강 뿐 아니라 에너지, 교통,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문제인데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반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