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사상 첫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에서 ‘개인에게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는 큰 도약’이라는 닐 암스트롱의 명언을 인용했다. 또 “제 개인에게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문”이라고 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으로 기록된 암스트롱처럼 이날 회담을 양국 수교로 나아가는 이정표로 삼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쿠바와의 수교로 나아가는 ‘첫 물꼬’를 튼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다만 북한의 반발을 염두에 둔 쿠바 측의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
윤 장관은 회담을 마친 뒤 “앞으로 이러한 접촉을 계속하고, 또 다양한 레벨에서의 접촉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옛날에는 조그만 길이었다면 이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오고 있다”며 “이번 방문이 비교적 제대로 된 길이 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동석한 관계자는 “양자 문제와 글로벌 협력, 인사(교류) 문제를 포함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면서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우리 측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고 쿠바 측도 진지하게 소통했다”고 전했다.
우리의 수교 의사를 전달하고 양측이 관계 개선에 공감대를 확인한 만큼 양국의 관계 진척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양측은 회담에서 관계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다각도의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쿠바는 시리아, 마케도니아, 코소보와 더불어 북한과 단독 수교를 맺고 있는 4개국 중 하나로 북한과 ‘형제국’의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쿠바는 북한을 의식했는지 취재진에게 단 1분간만 회담을 공개했다. 윤 장관이 회담 이후 쿠바 측 반응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한 점 역시 민감한 쿠바의 입장을 고려한 대응으로 이해된다.
현재 대북 제재로 인해 극도의 고립 국면을 겪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한국과 쿠바 간 관계 정상화는 그야말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고위급 인사 교류 등 동맹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단시일 내 수교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미·쿠바 관계정상화로 인한 시장 개방 등을 염두에 두고 정치·경제 전반에 대한 신중하고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장관과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교부 장관의 회담은 당초 30분으로 예정됐지만 이례적으로 75분에 걸쳐 계속됐다. 윤 장관이 우리말로 말하면 통역이 스페인어로 전달했고, 로드리게스 장관의 스페인어 발언은 영어로 통역됐다. 윤 장관은 암스트롱의 발언과 함께 쿠바의 혁명가이자 독립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시 ‘관타나메라’를 언급, 아늑하고 포근한 쿠바의 경치에 에 대한 친밀감을 표했다. 배석한 외교소식통은 “쿠바 측이 매우 좋아했다”고 전했다.
쿠바 측은 현지시간으로 윤 장관이 쿠바에 도착한 직후부터 고급 중형 세단을 제공하고 이동시 에스코트 차량을 붙이는 등 미수교 국가임에도 최상의 의전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날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에서도 옵서버로서 공식 발언권이 없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담은 문서를 이례적으로 회원국들에 회람시키기도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의장국인 쿠바가 한국 외교부 장관의 첫 방문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전망...수교까지는 걸림돌 적지 않아
입력 2016-06-06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