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 조코비치, 식단이 그를 바꿨다

입력 2016-06-06 15:04
노박 조코비치가 프랑스오픈 우승컵을 들고 상념에 빠져 있다. AP뉴시스

세계 남자 테니스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하며 테니스 새 역사를 썼다. 역대 8번째다. 올림픽 금메달마저 겨냥하는 조코비치는 남자선수로는 처음인 골든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

조코비치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앤디 머레이(2위·영국)에 3대 1(3-6 6-1 6-2 6-4)로 역전승했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6회)과 윔블던(3회), US오픈(2회)에서 우승을 경험한 조코비치는 그동안 프랑스오픈에서 세 번(2012년·2014년·2015년) 결승에 오르고도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마침내 4대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맛본 그는 프레드 페리(영국), 돈 버지(미국), 로드 레이버(호주), 로이 에머슨(호주), 안드레 애거시(미국),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에 이어 역대 8번째로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한 해 4대 메이저 대회+올림픽 금까지

지난해 윔블던과 US오픈, 올해 호주오픈에서 연이어 우승한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까지 정복하면서 해를 바꿔 메이저대회 4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름하여 ‘노박 슬램’이다. 남자프로골프에서 2000~2001년 타이거 우즈(미국)가 해를 바꿔 4연속 메이저 대회를 석권할 때 언론이 붙여준 ‘타이거 슬램’을 빗댄 말이다.

조코비치는 이제 같은 해 4대 메이저 우승(캘린더 그랜드슬램)이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캘린더 그랜드슬램은 1938년 돈 버지(미국)와 1962년, 1969년 로드 레이버(호주) 등 세 번 밖에 없었다. 하드 코트, 클레이 코트, 잔디 코트 등 각기 다른 코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를 한 해 석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프로선수의 메이저대회 참가가 허용된 1968년 이후에는 레이버가 유일하다. 조코비치가 7월 윔블던과 9월 US오픈을 석권하면 47년 만에 캘린더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내친 김에 8월 열리는 리우올림픽 금메달에도 도전한다. 같은 해 4대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금까지 딴 남자 테니스 선수는 없었다. 여자선수로는 슈테피 그라프(독일)가 1988년 4대 메이저대회와 올림픽 금메달을 동시에 얻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골든 그랜드슬램’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그에게 헌사했다. 해를 달리해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금메달을 딴 남자선수도 애거시와 나달 둘 뿐이다.

현재로서는 딱히 조코비치를 견제할 선수가 없는 것도 골든 그랜드슬램 가능성을 높게 한다. 그동안 조코비치를 포함해 빅4로 불렸던 머레이, 페더러, 나달을 상대로 조코비치의 상대 전적이 모두 우위에 있다. 페더러는 조코비치를 상대로 통산 22승23패의 호각세이지만 나이(35세)가 문제다. 프랑스 오픈에서 무려 9차례나 우승했던 나달은 한때 조코비치의 천적으로 꼽혔지만 최근 7연패를 포함, 상대전적에서 23승26패로 뒤지고 있다. 이번 대회 3회전을 앞두고 손목 부상으로 기권할 만큼 잦은 부상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영국 선수로는 1937년 프레드 페리 이후 79년만에 프랑스오픈 결승에 오른 머레이도 상대전적에서 10승24패로 열세다. 호주오픈에 이어 이번 대회 결승에서 조코비치에 패했다.

◇그를 바꾼 건 식이요법

조코비치는 6년전만 하더라도 약골이었다. 기량은 정상급이나 랠리가 길어지고 체력소모가 심한 경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경기중 메디컬 타임을 불렀다. 그는 늘 몸이 무거웠고 피곤했다.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있었다. 그는 만성 천식을 앓고 있다고 믿었다. 클레이코트는 볼이 바운드 된 뒤 속도가 줄어들어 랠리가 길고 체력소모가 심했다. 그가 유독 이 대회 우승이 늦어진 이유였다. 그를 바꾼 것은 획기적인 운동처방이 아니었다. 단지 2주간의 식이요법을 통해서였다. 2010년 1월 호주오픈 8강전을 우연히 TV 중계로 지켜보던 세르비아 영양학자 이고르 체토예비치 박사는 조코비치의 체력 저하는 천식 때문이 아니라 식단에 문제가 있음을 예단하고 연락을 취해왔다.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던 체토예비치 박사는 6개월 뒤 그를 만나 잘못된 식단으로 인한 소화체계불균형이 호흡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조코비치는 아버지가 피자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피자와 파스타, 빵을 엄청나게 즐겼었다. 체토예비치 박사는 그에게 글루텐(밀가루에서 나오는 단백질)을 금해 보라고 권했다. 단 2주간 피자, 빵을 금한 뒤 4㎏이 줄었을 뿐인데 그의 몸은 이제까지와 달라졌다.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고 경기중 호흡곤란도 사라졌다. 2011년 1월부터 그는 1년간 43연승을 포함해 51전 50승을 기록했다. 그 사이 3차례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 1위에 처음으로 올랐다. 단지 식단의 변화만으로 전혀 다른 선수가 된 것이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