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 만들어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스완 송 ‘마지막 거물(The Last Tycoon)’을 봤다. 1920~3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를 배경으로 거대 영화사의 거물 제작자(실존인물인 MGM의 어빙 탈버그가 모델이었다고 한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할리우드의 뒷얘기를 그린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아 어떤 영화인지 늘 궁금해하다 영화가 나온 지 무려 40년 만에 찾아봤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유작 소설을 해롤드 핀터가 각색하고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만큼 기대가 컸지만 막상 본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그저 그랬거니와 대중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그것도 거장으로 추앙받던 카잔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함은 더했다.
특히 이 영화는 많은 스타들이 망라된 이른바 올스타 캐스트 영화여서 관객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했음에도 비평은 물론 흥행에도 실패했다. 드니로 외에 출연진을 보면 로버트 미첨, 토니 커티스, 잔 모로, 잭 니콜슨, 레이 밀랜드, 도널드 플레즌스, 앤젤리카 휴스턴 등이 있다. 이만하면 ‘진수성찬’ 아닌가. 이런 호화찬란한 이름들에도 넘어가지 않고 장사가 안될 것을 확실히 내다본 ‘똑똑한’ 국내 영화수입업자들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사실 올스타 캐스트 영화는 대개 관객몰이에 성공한다. 많은 스타들이 스크린을 채우는 것만으로 장사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40명이 넘는 대스타들을 단역과 카메오로 써먹음으로써 마치 별들의 전시장처럼 된 데이빗 니븐 주연의 ‘80일간의 세계일주(1956)’(성룡 주연의 시시한 리메이크 영화가 아니다)와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모두 당대의 톱스타들을 동원해 대히트를 친 ‘오션스 일레븐(1960, 2001)’이었거니와 그래서 일찍부터 올스타 캐스트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 효시는 아마도 어빙 탈버그가 제작한 ‘그랜드 호텔(1932)’일 것이다. 그레타 가르보와 조운 크로포드, 존 배리모어와 라이오넬 배리모어, 그리고 당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았던 최고의 흥행배우 월러스 비어리를 모아놓은 이 영화는 베를린의 그랜드 호텔을 무대로 세계에서 모여든 많은 투숙객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넣은 인생 드라마였다. 이처럼 복작대는 장소에 모인 여러 인물들의 기구한 이야기를 서로 교차시키거나 별개로 이어놓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에 스타들을 집결시킨 영화는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거니와 ‘그랜드 호텔’의 대표적인 ‘후손’이 ‘에어포트(1970)’다. 아서 헤일리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조지 시튼이 감독한 이 영화에는 버트 랭카스터, 딘 마틴, 진 세버그, 재클린 비셋, 밴 헤플린, 헬렌 헤이스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재난영화’의 선구가 되기도 했다.
재난영화는 이야기 구조 상 많은 등장인물이 요구돼 올스타 캐스트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진 해크먼, 어네스트 보그나인, 셸리 윈터스, 레드 버튼스, 레슬리 닐슨 등이 총출동한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로널드 님)’와 폴 뉴먼에 스티브 맥퀸이라는 ‘꿈의 듀오’에 더해 윌리엄 홀든, 페이 더나웨이, 프레드 아스테어, 제니퍼 존스, 로버트 와그너, 로버트 본, 리처드 챔벌린, O J 심슨 등이 가세한 ‘타워링 인페르노(1974, 존 길러민)’, 그리고 찰턴 헤스턴, 에바 가드너, 조지 케네디, 쥬느비에브 뷰졸드, 리처드 라운드트리 등이 출연한 ‘대지진(1974, 마크 롭슨)’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소규모 전투가 아닌 전쟁영화 역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야 하는 특성상 올스타 캐스팅을 즐겨하는 장르다. 워낙 많은 인물이 화면을 수놓다보니 존 웨인, 헨리 폰다, 로버트 미첨, 리처드 버튼 같은 톱스타들도 단역이나 카메오 수준으로 출연한 ‘지상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 1962, 켄 아나킨 등)’이라든가 더크 보가드, 로버트 레드포드 외에 비슷한 수준의 톱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1977, 리처드 어텐보로)’, 그리고 좀 더 최근작으로 닉 놀티, 션 펜, 조지 클루니, 애드리언 브로디, 짐 카비젤, 존 큐색, 우디 해럴슨, 존 트라볼타 등이 얼굴을 비친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 1998, 테렌스 맬릭)’이 있다. 다 알다시피 ‘지상최대의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머나먼 다리’는 마켓 가든 작전을, 그리고 ‘씬 레드 라인’은 과달카날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통 에픽(epic)으로 불리는 대하 서사극이나 대형 서부극, 그리고 코미디까지도 올스타 캐스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흥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에픽의 경우 데이비드 린 감독이 대표선수격인데 그의 작품인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닥터 지바고(1966)’가 올스타 캐스팅의 전형이다. 특히 피터 오툴, 알렉 기네스, 앤서니 퀸, 잭 호킨스, 오마 샤리프, 호세 페러 등이 포진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무려 222분의 러닝 타임 동안 여성의 대사라고는 한마디도 없는, 즉 주요한 여성 출연자가 한명도 없이 오로지 남자 스타들만으로 스크린을 채운 특이한 구성으로 유명하다.
게리 쿠퍼나 앨런 래드, 존 웨인 등 대개는 총싸움 잘 하는 톱 배우 한두명으로 충분한 서부극도 에픽급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존 포드, 헨리 해서웨이 등 서부극의 거장들이 공동연출한 ‘서부개척사(How West Was Won, 1962)’를 보자.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한 한 가문의 4대에 걸친 역사를 그린 이 영화에는 헨리 폰다,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고리 펙, 리처드 위드마크, 조지 페퍼드, 데비 레이놀즈, 캐롤 베이커, 칼 몰든, 일라이 월라크 등이 화면이 비좁다는 듯 다투어 얼굴을 내민다(나중에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스타가 되는 리 밴 클리프도 악당 단역으로 나오는데 크레디트에는 당시 스타들의 이름이 얼마나 우글거리는지 그의 이름은 아예 소개조차 되지 않는다). 스토리와 관계없이 이들의 모습만 보고도 포만감에 배를 두드릴 지경이다.
코미디도 마찬가지. ‘미스터 빈’의 로완 앳킨슨이나 ‘마스크’의 짐 캐리처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배우를 전면 활용하는 영화들도 있지만 당대의 내로라하는 코미디언이나 코미디 배우를 모두 모셔온 코미디도 많다. 옛날 것으로는 거장 스탠리 크레이머가 만들어 수많은 관객들이 배꼽을 잡게 한 ‘매드 매드 대소동(It’s a Mad, Mad, Mad, Mad World, 1963)’을 들 수 있다. 일단 주연은 진지한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지만 당시 미국에서 한다하는 코미디언과 코미디 배우는 모두 모아놨다. 미키 루니, 지미 듀런트, 피터 포크, 시드 시저, 밀튼 벌, 버디 해킷, 필 실버즈, 조나산 윈터스, 에셀 머먼, 딕 숀, 테리 토머스(영국), 기타 등등. 또 비교적 요즘 것으로는 영국제 크리스머스용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 리처드 커티스)’가 있다. 휴 그랜트, 콜린 퍼스, 리암 니슨, 에마 톰슨, 키라 나이틀리, 앨런 리크먼, 그리고 로완 앳킨슨까지 영국의 스타란 스타는 총출동했다.
그런가 하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아직 완전히 뜨지 않아 조연급 또는 루키급이었던 이른바 ‘장촉(장래가 촉망되는)’ 배우들을 모아놓은 ‘미래의 올스타(all stars-to-be)’ 영화들도 있다.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 1960)’. 이 영화에는 톱 주연 율 브리너를 제외하고 당시 스타라고 할 만한 배우가 없었으나 나머지 ‘황야의 6인’ 중 한 명, 즉 브래드 덱스터만 빼고는 나중에 모두 톱스타가 됐다.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로버트 본, 그리고 유럽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렸던 독일 출신의 호르스트 부크홀츠까지. 전쟁영화에도 올스타 투비 영화가 있다. ‘특공대작전(Dirty Dozen, 1967, 로버트 올드리치)’과 ‘라이언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 스티븐 스필버그)’다. 리 마빈이 주인공을 맡았던 ‘특공대작전’에는 존 카사베테스, 찰스 브론슨, 짐 브라운, 텔리 사발라스, 도널드 서덜랜드 등 앞으로 특급 스타가 될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라이언일병 구하기’에도 에드워드 번스, 빈 디젤, 지오바니 리비시, 배리 페퍼 등 곧 한가락하게 될 주연급 스타들이 떼거지로 출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올스타 캐스팅 영화도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호화찬란한 출연진과 별개로 워낙 영화가 시원찮은 탓이다. ‘마지막 거물’이라든지 ‘대지진’, ‘머나먼 다리’ 등이 그렇다. 그러고 보면 올스타 캐스트 역시 흥행의 충분조건은 아닌 듯싶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73>올스타 캐스트
입력 2016-06-06 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