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가 열이 난다. 4일 새벽부터 37도 초반을 찍더니 오후 들어 38도를 넘겼다. 38도는 백혈병 환아들에게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38도가 넘으면 약한 면역력을 뚫고 균이 침입한 것으로 간주, 곧바로 균배양검사와 함께 항생제 치료에 들어간다.
오전에 미열이 있을 때 제발 38도만 넘지 않기를 기도했다. 열이 나면 약 일주일 정도는 퇴원할 수 없다. 하루 3번 항생제를 맞으며 열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항암 부작용으로 잠시 나다 말지 않을까란 생각에 검사를 뒤로 미룰까 생각했지만, 초기에 열을 안 잡으면 패혈증 등 위험하게 될 수도 있다는 레지던트 말에 바로 검사에 들어갔다. 2주 전 1차 고용량 항암치료처럼 입원 5일 만에 가뿐히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밥을 거의 안 먹어 힘도 없는 애를 또 손등 채혈에, X레이 검사에, 소변검사로 들들 볶았다. 인영이는 울고, 인영일 붙잡고 있는 엄마도 덩달아 울었다. 나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아 아내한테 울지 말라 역정만 냈다.
저녁에 혼자 마트에 갔다. 영상통화로 인영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샀다. 계산대로 가는데 유아용 바캉스 용품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겁 많은 언니와 달리 두 살 때부터 수영장에 가면 나올 줄 모르던 인영이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튜브를 들었다 놨다. 아까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우리도 남들처럼 여름에 바캉스도 가고 싶은데, 네 식구 함께 바캉스 용품도 고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서러웠다. 병원에 돌아오니 인영이는 아빠를 찾다 잠들었다고 한다. 새벽에 깨서 장난감을 찾을지 몰라 아내에게 장난감을 전해주고 다시 기자실로 왔다.
어제 밤, 오랜만에 3년 전 세베리아(세종시+시베리아) 시절 친했던 분들을 만나 웃고 떠들었다. 이젠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별 탈 없이 이어진 치료에 방심한 틈을 타, “아쭈 날 우습게 보네”라며 백혈병이란 놈에게 한 방 맞은 느낌이다. 아빠는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그리고 열은 잡혀야 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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