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먹는 백곰’ 변대용 작가 “유머와 위트로 곰곰이 생각하다”

입력 2016-06-04 19:23


7월25일까지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에비뉴엘 ‘멜팅 아이스’(Melting Ice) 

흰 곰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거나 옮기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몸 위에 얹은 채 걸어가고 있는 곰도 있고 사람 등에 업혀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곰도 있다. 인간과 동물의 어울림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에비뉴엘 곳곳에 전시돼 있는 팝아티스트 변대용(44) 작가의 작품이다.
6월 1일부터 7월 25일까지 ‘멜팅 아이스’(Melting Ice)라는 제목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백곰’ 등 대형 설치물을 비롯한 백곰 우화 시리즈 9점과 미키마우스, 대형 푸우 렌티큘러 등이 관람객을 손짓하고 있다. 에비뉴엘 1층에 설치된 대형 백곰들은 커다란 아이스크림 덩어리 주변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내고 있다.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둥그스름한 이미지와 산뜻한 파스텔 톤의 컬러로 상상 속 귀여운 백곰들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은 의미심장하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현실에서 아이스크림은 북극곰에게 고단함을 잊게 해주기 위해 작가가 건네는 위로의 음식이다. 북극곰들에게 잠깐의 달콤한 기분을 제공하겠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변대용의 조각들은 우화로 가득하다.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작품 속에 사회에 던지는 서늘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메시지는 우리 사회와 현실의 민낯이나 다름없다. 빙하는 녹아내리고, 북극곰은 더 이상 살 곳을 잃었다. 북극곰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지만 금세 배고파서 울부짖게 될 ‘한낮의 꿈’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굳이 주제의식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백화점을 찾는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의 작품 주인공은 백곰이지만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로 사랑해주고 따스하게 감싸 안는 ‘가족 감성’이 배어 있다. 9남매의 여섯째로 태어나 자란 집안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전시되는 ‘키티’와 ‘미키’ 시리즈는 깜찍하다. 작가가 부산 아트팩토리(공장형 작업실·레지던시)에 있었을 때 일이다. 800평이 넘는 공간에서 여러 작가들이 먹고 자면서 작업했다. 음식물 있는 곳에 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조그마한 쥐를 잡겠다고 인간이 벌이는 소동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쥐와 고양이, 쥐와 인간의 관계에 사회의 모순을 투영했다.


사회적 약자와 강자로 비유되는 이 관계를 비틀어 키티와 미키를 만나게 했다. 미키의 탈을 쓴 생쥐와 키티의 탈을 쓴 고양이. 세계적인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지만 둘이 마주쳤을 때 과연 그들은 어떤 구도에 놓일까. 생쥐들 모두 미키인 척 탈을 쓰고 한껏 웃음 짓고 있지만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의 작품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전시 중인 19점 가운데 8점은 변대용 작가의 작품을 소재로 사진작가 임수식이 촬영한 사진작품이다. 임수식 작가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고, 변대용 작가는 임수식 작가에게 어떠한 관점도 강요하지 않았다. 두 작가의 자연스런 협업이 입체와 평면의 조화라는 이색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산타 복장을 한 사람 등에 업힌 백곰 작품 가운데 사람 얼굴 부분, 곰의 엉덩이 부분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 작품은 같은 소재이면서도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변대용 작가의 부산 사하구 작업실과 서재를 찍은 임수식 작가의 ‘책가도’가 독특하다. 변대용 작가는 “아~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다른 시선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8일부터 8월 21일까지 롯데갤러리 청량리점으로 옮겨진다. 이곳 전시에서는 ‘트라잉 리밋’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기념한 스포츠 작품들이 추가돼 선보인다. 변대용 작가의 작품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사회에 대한 질문을 위트와 유머 감각으로 던져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02-2118-2728).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