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46)의 장편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창비출판사)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로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받았다. 현재 폴란드, 베트남,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에 이르는 등 27개국에 번역 판권 계약을 했다. 채식주의자가 이렇듯 국경을 넘어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번역자로 맨부커상 공동 수상자인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29)가 3일 발간된 대산문화 여름호에 번역후기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질문하고’를 실었다.
스미스는 이 글에서 한국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아시아에서 동유럽, 남미에 이르기까지 세계와 통하는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우선 이 시적인 연작 소설에 대해 “주인공 영혜는 육식을 거부함으로써 월급쟁이 남편과 비디오아티스트인 형부,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언니의 신경을 건드린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영혜라는 중심인물을 주변 인물들의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영혜에게 극단적인 수동성을 부여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한강은 주인공은 어떠해야 한다는 유럽 중심적 통념에 도전한다”고 해석했다.
이어 “영혜가 식구들이 지닌 두려움과 선입견과 억눌린 욕망을 다만 담아내기만 하는 일종의 그릇에 불과한 인물로 그려지듯이, ‘채식주의자’ 또한 그 입장과 의미를 두고 천차만별로 나뉘는 해석에 기꺼이 몸을 내맡기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것이 ‘채식주의자’가 국경을 가로질러 읽히는데 성공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예컨대, 베트남 독자들은 가부장적 가족 구조의 역학관계에 쉬이 공감할 것이라는 기대가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스미스는 호칭의 번역에서 개개인의 이름을 쓰기보다 한국식으로 ‘처제의 남편’ ‘지우 어머니’ 같은 관계에 기반 한 호칭을 썼다. 영국 독자들이 유교적 위계질서에 따른 경직된 사회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스미스는 한국어와 영어가 다르다보니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기 위해 과감히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기도 했다. 예컨대 1부를 번역하면서 ‘완전히(completely)' ’당연히(surely)'와 같은 부사를 몇 군데 삽입했는데, 이는 영혜의 남편의 말투에서 현학적이고 또 스스로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식적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한강은 이 소설이 독자들을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독자들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모색하게끔 만들기를 바랐으며 자신 역시 영어권 독자들에게 그런 자극을 주기를 바라며 번역했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데보라 스미스 "한강 채식주의자 이래서 세계와 통했다"
입력 2016-06-04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