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하청 근로자 윤모(62)씨는 지난 1일 폭발·붕괴 사고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열흘 넘게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 다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윤씨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진접역 공사장으로 옮겨 온 게 2주쯤 전이다. 현장은 쉴 틈 없이 일을 시켰다. 사고가 난 1일도 원래는 쉬는 날이었다. 이날 “바쁘니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집을 나간 윤씨는 흙투성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벌벌 떨면서 일했다”
윤씨가 투입된 지하 15m 작업 현장은 유난히 비좁았다. 다리를 떠받치기 위한 구조물들을 촘촘히 박아 놓은 탓이었다. 지하철 공사 경험이 많은 윤씨에게도 낯설고 어려운 현장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꼼짝을 못한다”는 얘기를 가족에게 두어 차례 했다. 하루는 비라도 맞은 사람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서 귀가했다. 그는 “현장에 물이 많이 떨어진다”고 했다. 초여름처럼 더운 날이었는데도 “추워서 벌벌 떨면서 일했다”고 토로했다.
윤씨는 오랫동안 여러 건설현장에서 일했지만 이번에는 유달리 힘든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2일 오전 남양주 한양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딸(34)은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찜찜했다”고 말했다. 원망과 설움이 얼굴에 가득했다.
아직 빈소가 차려지지 않은 장례식장 한구석 소파에 윤씨의 아내(60)는 거의 실신 상태로 주저앉아 있었다. 이들 가족은 앞서 영안실에서 가장의 시신을 확인하고 통곡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유족들에게 “작업장에서 담배를 피운 누군가의 일탈로 폭발했을지 모른다”거나 “용접을 시킨 적이 없고 용접 시간도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씨 가족은 “죽은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윤씨를 비롯한 진접역 공사장 사고 사망자 4명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 사망자인 19세 수리공는 모두 하청 근로자였다.
몰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되풀이되는 ‘하청 근로자의 죽음’은 안전조치가 무시되는 작업 환경, 과중한 작업량, 원청업체 부실 관리 등이 빚어낸 비극이다. 이런 진단은 새롭지도 않다. 최근 사고 건설현장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10월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 보고서에 판박이처럼 담겨 있었다.
당시 조사에서 “안전조치 없이 일한 경험이 있다”는 건설플랜트 분야 하청 근로자는 41.2%였다. 이유는 ‘너무 바빠서’(39.2%), ‘원청·상급자 눈치 때문에’(30.8%),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아서’(28.8%) 등이었다. 인권위는 “‘너무 바빠서’가 가장 많이 나온 건 공기(공사기간) 단축 등을 이유로 과중한 업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안전장비와 응급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된 건설현장은 드물었다. 사전 기본 교육 없이 공정에 투입되는 근로자가 40.8%였다. 작업장에 위험물질이 있을 때 충분히 제거한 뒤에 투입되느냐는 질문에는 31.7%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붕괴·화재·폭발·추락 등 작업장 위험요인에 대한 안전조치를 하느냐는 질문에 원청업체는 38.7%, 하청업체는 41.4%가 “안 한다”고 응답했다.
건설현장에서는 하청업체의 68.1%가 직접 업무 지시를 하고 작업량도 결정하고 있었다. 현장에 원청업체나 발주처 직원이 거의 없고 대부분 하청업체 직원만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인권위는 안전조치 없이 일하는 이유로 ‘원청·상급자의 눈치’가 비교적 낮게 나온 원인도 현장에 원청업체나 발주처 직원이 없기 때문일 것으로 봤다.
하청 근로자는 위험한 환경에서 현장 업무 대부분을 담당하면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다. 하청 근로자 중 제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은 절반을 조금 넘는 51.2%에 그쳤다. 절반 가까운 하청 근로자가 정식 근로계약도 하지 않고 일한다는 의미다. 근로계약서가 없다는 하청 근로자는 10명 중 거의 8명꼴인 78.4%였다.
돈과 맞바꾼 근로자 목숨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재희 교육선전실장은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예전엔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교육을 받았는데 이제는 4시간짜리 안전교육을 한 번만 받으면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며 “건설현장 안전교육이 퇴화됐다”고 꼬집었다.
전 실장은 “(하청업체는) 적은 금액으로 공사를 따서 돈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안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공사 단계가 많을수록 돈을 깎아 먹는데 그중에서도 안전 관리비가 깎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작업하기에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근본적이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박종일 교수도 “(공사) 금액이 적게 잡히면 안전에 신경을 쓰기 힘들다”며 “발주처가 면피라도 하려면 최소한 한 하도급(업체)이 필요하다고 하는 부분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제재도 약하고 안전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다 보니 결국 ‘돈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안전을) 무시하는 쪽이 더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신영철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사망하는 근로자가 연간 500~600명으로 전체 산업현장 사망자의 25%를 차지한다”며 “건설 근로자가 타업종보다 4배 정도 죽는다”고 설명했다.
약자에게 모든 책임을
신 단장은 “발주자가 가장 권한이 세고 그 다음이 원청인데 우리나라는 제일 힘이 없는 하청에 모든 책임을 다 지운다”며 “하청을 통해 책임을 떠넘기는 시스템 때문에 사고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3년 7월 강물 범람으로 교량 작업자 7명이 사망한 ‘서울 노량진 수몰사고’ 사례를 들었다. 당시 하청업체 담당자는 구속됐지만 원청업체 측은 불구속에 집행유예, 발주자는 무죄를 받았다. 신 단장은 남양주 사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책임이 없고, 힘없는 사람한테 책임을 많이 지우는 이상한 나라”라며 “권한을 가진 사람한테 책임을 많이 지우는 사회가 돼야 반복되는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사고는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이 작업 현장에 대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전 실장은 “안전 점검을 충분히 해서 지하 작업 공간 안전을 확보해준 다음 작업자를 투입시켰어야 하는데 포스코건설은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안전교육을 잘 받고 안전장비를 잘 착용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부주의해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건 회사의 변명일 뿐”이라고 말했다.
자격증도 없는 사람들을
경기 남양주경찰서는 2일 수사 브리핑을 통해 진접역 공사장 사고 사상자 14명이 포스코건설의 하청업체인 매일ENC와 16만∼18만원의 일당을 받는 계약관계를 맺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들 중 용접공은 3명뿐으로 나머지 11명은 용접 자격증이 없는 일용직 철근공과 굴착공이었다. 경찰은 업체가 이들의 용접 자격증 소지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지 않는 등 안전 관리에 부실했다고 덧붙였다.
강창욱 권준협 기자, 남양주=이가현 김연균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