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승리 탐하면 이길수 없고, 작은 것 버리고 큰 곳으로 나아가는게 정치”

입력 2016-06-02 16:54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보여줬듯이, 우리 인류가 가는 길은 더 다양해졌지만 책임도 무거워졌습니다"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신이 창조한 최고의 지능생명체인 인간과 인간이 창조한 최고의 인공지능 알파고간의 두뇌 싸움, 그 7일 간의 기록과 해설이 책으로 나왔습니다"라며 "책 제목이 "신의 한 수 인간의 한 수"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 책에 이창호 9단, 양재호 9단과 함께 추천사를 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세돌의 전력을 다한 승부 속에서 저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바둑이 정치에 주는 가르침을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쓴 추천사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문 전 대표는 "정치는 생물(生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치를 정의하는 것은 간단치 않습니다"라며 "우리의 삶에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일 테지요. ‘평등’과 ‘자유’는 바둑에서 ‘세력’과 ‘실리’처럼 조화를 이룰 때 그 힘을 발휘합니다"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정치는 바둑을 통해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승리를 탐하면 이길 수 없으며(不得貪勝),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아야(攻彼顧我)합니다"라며 "작은 희생을 감수하며 훗날을 기약해야(棄子爭先)하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곳으로 나아가야(捨小就大)하는 것이 정치입니다"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저는 바둑이 취미였습니다"라며 "일반 아마추어치고는 꽤 잘 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법조 내 작은 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고, 고재희 사범이나 이기섭 사범 같은 프로기사들과 3점 또는 4점 지도기로 가르침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바둑돌을 손에 잡아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이제는 취미라고 감히 말할 처지가 못 됩니다. 하지만 지금도 신문을 들면 꼭 기보를 볼 정도로 여전히 바둑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제 양산 시골집, 계곡을 마주한 툇마루에서 여유롭게 바둑을 즐길 수 있을 때를 꿈꿉니다"라고 했다.

그는 "저는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배웠습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크게 보고, 멀리 내다보고, 전체를 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어 "바둑에서 국지전의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늘 반면 전체를 보면서 대세를 살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꼼수가 정수에 이길 수 없는 이치도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세돌은 승부에서 알파고에게 졌습니다. 하지만 이세돌은 영웅이 됐습니다. “바둑의 낭만을 지키겠다”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게 아니다” 등의 말은 그 어떤 정치가의 연설보다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습니다"라며 "마치 후절수의 묘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바둑은 승패가 분명하지만 인생은 지고도 이길 수 있는 법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저도 정치의 낭만을 지키고 싶습니다. 대중을 휘어잡은 이세돌의 조용한 웅변이 부럽습니다. 이세돌 대 알파고 간의 ‘세기의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본 저로서는 이 승부가 책으로 엮여 나온다는 소식이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세 판을 연달아 진 후 제4국에서 터져나온 백78수가 ‘신의 한 수’였다고 합니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간 고수가 둔 78수에 버그를 일으키며 ‘Resign(물러나다)’을 선언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승리 후 “한판의 승리가 이렇게 기쁠 수 없습니다”라며 환하게 웃던 이세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의 웃음이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습니다"라며 "저도 대한민국의 부조리와 불공정, 반칙과 특권들로부터 ‘Resign’을 받고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끝으로 "이세돌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이라고 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