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강원도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야구장 인근 주변 바닥은 마치 갈색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것은 잿빛 날개가 달린 수만 마리의 나방이었다.
야구장 입구에 세워진 첫 번째 조명에서부터 두 번째 조명에 이르는 20여m 구간의 인도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의 나방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발에 밟혀 죽은 나방이 없는 빈 공간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살아있는 나방이 어느새 날아와 나방을 밟지 않고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야구장을 관리하는 춘천도시공사 직원들은 지난주부터 일주일 동안 수십만 마리의 나방을 치우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강풍기를 이용해 나방을 치우던 황예석(39)씨는 “전날에도 바닥에 쌓인 수십만 마리의 나방을 치웠는데 아침에 와보니 전날과 같은 양의 나방이 죽어있었다”며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는 나방 때문에 일할 맛이 안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춘천지역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시간 한림대 종합운동장 조명 아래도 나방 수천마리가 밟혀 죽어있거나, 그늘에 모여 있었다. 강원대 운동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나방을 보고 기겁을 하거나, 죽은 나방을 피해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야구장처럼 강한 조명이 있는 대학교 운동장과 테니스장, 축구장 등은 어김없이 나방 떼가 출몰하고 있다.
춘천시에는 지난달 27일부터 도심에 출몰하는 나방을 잡아달라는 민원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춘천지역에 대규모로 출몰한 해충은 ‘연노랑뒷날개’라는 이름의 나방이다. 길이 2~3㎝의 이 나방은 산간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나방으로 성충의 경우 보통 6~7월 사이에 나타난다.
야행성인 나방들은 낮에는 해가 들지 않는 그늘에 새까맣게 모여 있다가 야간에는 가로등이나 경기장 조명 등에 몰려들고 있다. 야간에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선 수십만 마리의 나방이 몰려들면서 가루가 날려 그 근처를 지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밤새 불을 켜놓는 편의점이나 식당에서는 아예 문을 열어 놓지 못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난달 27일부터 나방 떼가 대거 발견돼 나방을 퇴치해 달라는 민원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며 “주로 산과 인접한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 복개천과 강릉 남대천 등 도심의 하천을 중심으로 깔따구와 하루살이 떼가 기승을 부리는 등 주민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방제작업도 만만치 않다. 깔따구와 하루살이, 나방 등 곤충방역작업에 쓰이는 방제약에 인체와 농작물에 영향을 미치는 농약성분이 포함돼 있어서다.
고랭지밭이 많은 강원도 평창 대관령과 정선 등지에서는 진딧물이 예년보다 빨리 발생해 농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고령지농업연구소에 따르면 진딧물은 씨감자에 바이러스를 일으켜 수량을 감소시키는 등 피해를 준다. 대관령 지역의 진딧물은 보통 5월 초~6월 말쯤에 발생했다. 그러나 고령지농업연구소가 대관령 지역의 진딧물 발생을 조사한 결과 올해는 4월 하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관령의 4월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때 이른 날씨 때문에 해충이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꽃매미 등 돌발해충도 급증할 우려가 큰 만큼 조기 방재를 당부했다.
강원도농업기술원 정태성 연구사는 “곤충의 경우 건조하고 따뜻한 환경이 조성되면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고, 다시 알을 낳는 주기가 더 빨라진다”며 “춘천의 경우 나방의 서식지인 산림이 많고 날씨가 좋아 급격히 개체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해충이 출몰한 도심지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방제 하는 것보다는 서식지인 산림 등을 함께 방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춘천=글·사진 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춘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도심지 곤충의 습격, 치워도 치워도 끝없는 나방 떼
입력 2016-06-01 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