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아파트에서 투신한 대학생이 귀가 중이던 30대 가장을 덮쳐 둘 다 숨졌다.
지난달 31일 오후 9시50분쯤 광주시 북구 오치동 K아파트 101동 출입구에서 공무원 양모(39·곡성군청·7급)씨가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몸을 던진 대학생 유모(25)씨와 부딪혔다.
양씨는 느닷없이 머리 위에서 떨어진 유씨를 피할 겨를이 없어 바닥에 깔렸다. 직후 유씨는 현장에서 숨졌고 양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1일 새벽 숨을 거뒀다. 양씨는 이날 버스승강장으로 마중 나온 임신 8개월의 부인(34)과 아들(6)의 손을 잡고 귀가하다가 이 같은 사고를 당했다. 유씨에게 깔려 숨진 양씨는 최근까지 군청이 개최한 꽃축제와 영화 홍보 관련 야근을 마치고 만삭의 부인, 아들과 함께 아파트 출입구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부인과 아들은 손을 잡고 걷다가 아파트 출입구 근처에서 몇 걸음 떨어져 뒤따른 덕분에 화를 면했다. 지난 2008년 9급 공채로 공직에 발을 디딘 양씨는 2012년 처가가 있는 곡성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후 2014년부터 언론홍보 업무를 맡아 보도자료 작성과 소식지 발간 등을 담당해왔다. 최근에는 지명과 제목이 같은 영화 ‘곡성’을 활용해 자신이 소속한 곡성군을 홍보하는 일에 매달려왔다. 이로 인해 양씨는 매일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해 곡성에서 광주행 막차를 타고 오후 8시50분쯤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양씨는 이날도 야근을 한 뒤 평소보다 1시간여 늦게 귀가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갑자기 술병이 바닥에 부딪쳐 깨지는 소리가 들린 후 고층에서 떨어진 유씨가 양씨를 덮쳤다”고 말했다. 투신한 유씨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곡성군은 퇴근 후 귀가하던 중 사고가 난 점을 고려해 양씨의 순직을 신청하기로 했다. 곡성군 관계자는 “고인은 누구보다 성실한 공무원으로 맡은 업무에 빈틈이 없었다”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근 다른 아파트에 사는 유씨가 K아파트 20층 복도에서 술을 마시다가 병을 먼저 던진 후 투신자살을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유씨가 20층 복도에 남긴 가방 속에 “공무원 시험 준비가 외롭고 힘들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 공무원 시험을 본다. 사회적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A4 2장 분량의 편지를 남겼다고 밝혔다.
경찰은 원활한 보상과 순직·보험 처리를 위해 양씨를 숨지게 한 유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해자인 유씨 역시 숨져 검찰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양씨를 범죄 피해자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길가던 행인 날벼락'…20층서 투신 대학생과 부딪쳐 사망
입력 2016-06-01 08:19 수정 2016-06-01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