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로 촉발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해법을 두고 정치권에서 ‘백가쟁명’식 주장이 쏟아져 나오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세우며 정부 주도로 돈을 풀어야한다고 외치자 더불어민주당이 경영주와 주채권단이 우선 책임져야한다고 맞받았다. 국민의당은 이참에 산업구조 자체를 재점검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정의당은 대량 실업사태가 예상되는 만큼 사회적 안전망부터 구축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각 당의 목소리가 얽히면서 현장에서는 이러다 구조조정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공’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회사부터 살려야”=새누리당은 신속한 구조조정, 대량 실업 등 후유증 최소화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도 조선업을 올해 상반기 중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협력업체의 각종 세금 납부를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업 부실 사태의 원인과 책임 규명을 철저히 하고, 국민 부담을 최소화해야 된다는 게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며 “동시에 구조조정의 타이밍도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야당의 구조조정 청문회 주장에 대해선 반대 기류가 강하다. 경남 거제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은 “지금은 실질적인 조치가 중요하다. 청문회는 여야 정쟁을 유발하고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조선업이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역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에도 구조조정을 못하면 회사의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거라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에 일단 회사는 살려놓고 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더민주 “대주주·경영주 부실경영 책임져라”=구조조정 이슈를 가장 먼저 꺼내든 더민주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 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한 경영주와 주채권단에게 재정적 손실을 부담케 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31일 기자들과 만나 “책임질 사람은 책임질 수 있도록 더 이상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금융권을 통해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재정투자든 뭐든 이후 논의하자”고 했다. 선(先) 책임규명, 후(後) 정책지원 입장이다.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베일아웃’(신규자금 투입을 위한 부채조정)보다 ‘베일인’(부채 일부를 채권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의 경우 대주주이자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이 부실경영을 묵인한 만큼 마냥 국민의 세금만 쏟아 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외환위기 때도 산업은행의 방만경영 피해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줬다”며 “(이런 방식이) 영원히 갈 수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부실경영 방지 대책으로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를 내놓았다. 직·간접 고용 인원이 1만명 넘는 기업의 경우 노동자가 직접 경영을 감시할 수 있어야 극단적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의당 “판 키우자”, 정의당 “실업 대책부터”=국민의당은 부실경영 주체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더민주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조한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원포인트’ 구조조정이 아닌 ‘총체적 산업 구조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최근 한 대학 강연회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거론하며 “지금부터 특단의 대책, 대한민국 전 분야에 걸친 총체적 산업구조개혁이 있지 않으면 우리도 일본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문어발식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각 그룹마다 이제는 한 분야 또는 두 분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글로벌 수준의 전문 대기업으로 재편하는 게 우리의 살 길”이라며 재벌 구조 해체 논의를 시작했다.
정의당은 부실경영에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이 대량 실업에 내몰리며 피해를 뒤집어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심상정 대표는 “노사 경제주체들의 진정한 고통분담과 협력”을 거듭 강조하고 있고, 노회찬 원내대표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려해 기업들에 의한 정리해고는 오히려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대규모 자본 투입을 통한 구조조정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거다.
고승혁 권지혜 기자 marquez@kmib.co.kr
정치권 '백가쟁명'식 구조조정 해법에 정작 현장에선 혼선 우려
입력 2016-05-31 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