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빠다20>wanna be 슈퍼맨, but...

입력 2016-05-31 14:11
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아내에 따르면, 오늘 인영이는 오전 9시30분 택배 아저씨의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 아침식사로 계란 후라이 4개를 흡입한 뒤 차례차례 장난감 마와리를 돌았다. 인영이는 정오 경 “엄마 폰”이라고 외쳤고 이를 거부하는 엄마에게 울음보라는 필살기를 선보였다.
 그녀의 유투브 삼매경은 한시간 넘게 이어졌다. 점심 식사는 김과 밥. 위생장갑을 끼고 만든 꼬마 주먹밥을 10개 가량 먹은 뒤 후식으로 사과와 귤을 섭취했다. 낮잠을 자자는 엄마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다가 오후 5시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잠들었다. 낮잠을 재우지 않고 8시에 재우려했던 엄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오후 9시 눈을 뜨자 아빠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장난감 마와리를 돌았다. 저녁은 소불고기 반찬이었지만 인영이는 소불고기에 들어있는 당면만 골라먹었다. 후식은 물밥. 인영이는 이날 하루 “엄마”란 말을 500번 가까이 호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정이 가까워 잠들 때도 “엄마 코, 아빠 코, 언니 코, 아이야 코”를 수십 번 반복했다. 열은 없었지만 기침은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해져 엄마의 근심을 늘게 했다. 엉덩이 상태도 좋지 않다는 전언이다.
다시 입원을 앞두고 있는 인영이. 아빠는 57만원짜리 1인실에 입원시킬 재력도, 없는 병실을 만들어낼 능력도 없다.

오후 9시 귀가하니 아내가 윤영이를 ‘깨고’ 있었다. “너 오늘 학교 끝나고 바로 안 오고 친구 희선이 시켜서 놀다온다고 전화했지? 그거 아주 나쁜 거야. 예전에 아빠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올 때 자주 그랬었어.”
 나도 모르게 오늘 잘못한 일이 없는지 긴장했다. 한번 시작된 엄마의 생활지도는 끝날 줄을 몰랐다. 방에 너저분하게 늘어진 옷과 학용품들을 일일이 지적했다. 이 와중에 윤영이는 새학기 수학 교과서가 없어진 것 같다고 했고, 아내는 받은 지 이틀 만에 새 책을 잊어 버리는게 말이 되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내 두 여인은 안방 침대로 들어가더니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오늘 병원에 입원했어야 할 인영이는 내일 외래로 2차 항암을 시작하기로 했다. 애초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병실이 꽉 찬 상태에서 예정된 항암치료를 미룬 채 최소 일주일을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고, 1인실을 쓸 만큼 우리는 부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 올 때 인영이가 먹을 점심 도시락을 싸오라는 간호사의 말을 전하니 아내는 화를 냈다. 조리하고 2시간 이내의 음식만 먹여야 한다고 할 땐 언제고 도시락을 싸오라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였다. 역시 아내는 나보다 논리적이다. 나는 간호사의 설명에 ‘아 그래도 친절하게 우리 애기 먹을 것도 신경 써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내일 오전 8시까지 병원에 가려면 오전 6시 전에 윤영이를 옆동 친구 엄마에게 맡기고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인영이는 3가지 종류를 항암제를 8시간 넘게 맞은 뒤 다시 집에 와야 한다. 이 패턴은 5일 연속 이어진다. 오늘 하루 종일 인영이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지만, 결론은 나는 없는 병실을 만들어내는 슈퍼맨 아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이마트 스타벅스에서 친형처럼 의지하는 공무원 형을 만나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아줌마들이 왜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지 알 것 같다. 자야한다. 꿈속에라도 날고 싶다.(3월8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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