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비명소리였다. 이사를 하면서 우려했던 바퀴벌레를 결국 목격한 아내는 온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날 아내는 베란다에서 기분 좋게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매일 아침 반가운 얼굴로 화초들과 인사하며 대화하는 것은 아내가 누리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데 화분들 사이로 튀어나온 바퀴벌레 한 마리는 그 아침을 공포로 바꾸어버리고 말았다.
21세기 최첨단 시설의 새 아파트에서 살다가 전세계약이 끝나 상당히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됐을 때 여러 가지가 불편했다. 사람은 더 나은 환경으로는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슬프지는 않았다.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뿐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머리를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것에 비하면 우리는 대궐과 같은 집에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전세 값이 2년 사이에 1억원 이상이 뛰는 상황에서 그나마 들어가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부동산 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는 전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 다니며 수고해주신 담당 장로님과 집사님들은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이 정도면 얼마나 고급스러운 삶인가.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더 많다.
오래된 아파트이기에 집안 곳곳에 배어있는 악취는 집안 곳곳에 향이 나는 캔들을 밝혀서 잡았는데, 촛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우아해졌다. 싱크대에 연결된 배수관에서 물이 흘러 넘쳐서 부엌바닥이 흥건하게 홍수가 난적도 있었는데 덕분에 칸막이를 뜯어내 구석까지 쌓인 먼지들을 깨끗하게 물청소를 하게 됐고, 이후에는 물 사용을 줄이면서 해결했다. 화장실을 두 개 사용하다가 하나밖에 없어서 불편한 것은 이제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붙박이장이 부족해서 집안 이곳저곳에 아직 쌓여있는 옷 박스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이 아니라, 나그네의 삶일 뿐이며 결국 저 천국 본향을 소망하며 살아야 함을 상기시켜주는 영적인 교보재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환경에 매우 긍정적으로 감사를 찾아내며 즐기고 있다. 베란다가 있어 시원하게 호스로 물을 줄 수 있어 화초들이 싱싱하다며 기어코 화초 앞에 나를 불러 세워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새로운 집안구조에 가구들을 이리저리 꿰맞추며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맞바람이 치는 집이라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고 감사하고, 자주 이사하게 돼 대대적인 집안정리를 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하다고 말한다. 특히 목사님 사택이라는 이유만으로 권사님과 집사님들께서 몇 날 며칠을 찌든 때를 벗겨내기 위해 고군분투 해주신 사랑의 수고에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대로 모든 것들을 긍정과 감사로 받아들여 괜찮았는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복병을 만난 것이다. 새끼손가락만한 초대형 바퀴벌레를 발견한 순간부터 간장이 싸늘해지며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는다. 바퀴벌레가 내 아내를 보면서 더 기겁을 하는 게 맞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기도 전에 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안방과 거실에서도 나타났다. 이사하기 전에도 철저하게 방역을 한 후에 이사했건만 도대체 어디서 들어온단 말인가? 그날 아내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벌벌 떨었다. 웬만한 집안일은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척척 해내는 아내이지만 이번에는 간절하게 나의 도움을 요청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철물점에서 망사철망과 스티로폼 분사기 등을 사용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구멍을 차단하기로 했다. 이웃집과 우리 집을 연결할 수 있는 모든 대형 하수구 구멍은 망사철망으로 두르고 스티로폼 분사기로 메워서 완벽하게 차단을 했다. 초강력 테이프로 이곳저곳을 완전히 차단하고 덜컹거리는 창문의 틈새까지 테이프로 단단히 동여매어 아예 단 한 마리의 바퀴벌레도 우리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훈연 살충제를 이용해 혹시 방안 이곳저곳에 숨어있을 바퀴벌레를 박멸하기로 했다.
아침에 아내는 훈연 바퀴벌레 살충제를 방들마다 터뜨리고는 친구사모님 집으로 피신을 했다고 한다. 바퀴벌레의 씨를 말려죽일 작정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훈연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연기가 새어나가 혹시 이웃이 불난 것으로 오해할까봐 119에 미리 신고도 해놓았다. 그날 저녁에 집에 들어갔는데 얼마나 많은 살충제를 사용했는지 아무리 환기를 해도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했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눈은 따갑기까지 했다. 과연 이런 방 안에서 잠을 자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상황이 심각하다 느낀 아내는 바퀴벌레 살충제 표면에 쓰여 있는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검색해 보더니 경악을 했다. 살충제의 주성분이 미국과 EU에서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인체에 많이 흡입될 경우 발암과 내분비계장애를 일으키는 유해성 약제라는 것이다. 당장 호텔에라도 가서 자야 된다고 겁을 먹었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베개를 들고나가 소파에서 잠을 청한다. 정말 바퀴벌레 잡으려다가 사람 잡게 생겼다며 씁쓸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바퀴벌레와는 도무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걸.
잠자리에 혼자 누워 메케한 훈연 살충제 냄새를 맡으면서 이러다가 정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가 웃음이 나왔다. 바퀴벌레는 몇 마리만 나와도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정작 영적인 죄의 문제에는 둔감한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 대비되며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 이곳저곳에서 죄가 튀어나오는 게 마치 바퀴벌레가 나오는 것과 같다. 웬만큼 영적인 훈련이 되었다 생각되고, 그런대로 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죄는 꼭 흉측한 바퀴벌레와 같다. 그런데 죄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더욱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이 그냥 속수무책으로 있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이웃을 미워했던 바로 그 시커먼 내 마음속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교만하고 무시하는 혐오스런 바로 그 죄의 모습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우리는 바퀴벌레처럼 시커멓고 혐오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음속의 죄에 대해 예민해야 한다. 아내가 요즘 노이로제에 걸려 바퀴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고 치를 떨며 반드시 박멸해버리고야 말겠다고 하는 것처럼, 내 속에서 죄를 없애버리겠다는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심각함을 느끼고 남편에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 것처럼 주님 앞에 엎드려 철저한 내 심령의 영적 방역을 위해 간절히 기도로 요청해야 한다. 대충 치우며 바퀴벌레와 공존하게 되면 더 많은 벌레를 양산해내듯이 나의 신앙생활에 안주하며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다가 점점 더 세상과 연락하며 살게 될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바꾸어야한다.
내 삶을 돌이켜보라. 바퀴벌레가 더 무서운가? 내 속의 죄가 더 무서운가?
이국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목회자칼럼]대구 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바퀴벌레 박멸작전'
입력 2016-05-31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