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아픈 아내 두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를까?

입력 2016-05-31 08:09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한 마리아 스트라이돔과 로버트 그로펠 부부의 에베레스트산에서의 모습. 스트라이돔은 지난 20일 고산증으로 산에서 사망했다. 사진=가디언 캡처

몇 주 간의 고된 여정 끝에 에베레스트 정상이 15분 거리에 있다. 8850m의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다. 딱 15분이면 정상을 정복한다. 그런데 그 정상 정복을 앞둔 당신 옆에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는 아내가 있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내를 잠시 쉬게 하고 혼자서라도 올라가서 정상을 밟겠는가. 아니면, 정상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내려올 것인가.
지난 20일 에베레스트산에서는 딱 그 상황이 빚어졌다. 호주의 수의사인 로버트 그로펠과 대학 강사인 아내 마리아 스트라이돔(34) 부부는 함께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채식주의자로, 채식주의자도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대장정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정상을 15분 남겨둔 상황에서 아내가 심한 고산병을 호소했다. 셰르파(짐 운반인)와 함께 아내를 간호하던 그로펠은 얼마 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정상에 다녀오면 안될까?(Do you mind if I go on?) 15분이면 가능할텐데, 당신 날 기다려줄 수 있어?"
스트라이돔은 남편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 정상으로 향했고, 정말 15분쯤 뒤에 정상을 밟았고 곧바로 다시 아내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내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져 있었다. 몹시 힘들어했고, 셰르파들이 가져다주는 산소마스크 등에 의지해 겨우 하산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시, 스트라이돔은 하산길에 결국 숨졌다.
 남편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그로펠은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남편의 의무가 아내를 지켜주는 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서 “집에 안전하게 데려오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또 “다 내 탓이고 내가 비난 받는 것도 마땅하다”면서 “얼굴을 보게 되면 내 가슴이 터질까봐 아직까지도 아내의 사진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