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가 아픈 후 여행이나, 사람 많은 곳에 나들이를 갈수 없기 때문에 주말이 평일과 다른 건 대청소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청소는 더욱 힘들어졌다. 알음알음 대부분 환우 가족이 썼던 청소용 항균제가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호홉기에 치명적인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고민 끝에 이 항균제를 쓰지 않기로 했다.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2리터 대용량으로 사놓은 항균제를 욕실 한쪽에 치워놓았다. 이후 알콜, 식초 탄 물 등 천연 항균제로 청소를 하고 있지만 균을 잡는데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청소를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른 환우 가족들도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백혈병 환우 카페의 한 아빠는 이 항균제를 종이컵으로 한 컵 들이켜 본 뒤 계속 쓰고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아빠는 혹시 몰라 모두 잠든 밤에 물을 적신 휴지로 아이가 자는 방 틈까지 다 막은 뒤에 이 제품으로 청소를 한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백만원을 호가하는 수입산 청소기를 사용하다 ‘멘붕’에 빠졌다. 이 청소기는 미세먼지 발생 없이 청소를 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어 환우 가족들이 많이 사용한다. 아내는 청소기 안에 부착된 먼지통을 세척하고 싶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세척 방법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아내는 내부 청소를 하지 않아도 평생 미세먼지를 빨아들이기만 한다는 '요술 청소기'를 믿을 수없어 미세먼지가 발생하지 않는 근거를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원은 과학적 근거는 있지만 고객에게 알려줄 수는 없고 대외기관을 통해서만 공개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 (빌어먹을) 대외기관이 어딘지 상담원이 정확히 말하지 못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백혈병 환우 가족들은 민감해져 있다. 아니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를 위해 무균병동만큼은 아니더라도 집안 청결은 매우 중요하다. 집안에 균이란 균은 하나도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청소 및 위생 용품은 백혈병 환우 가족에게 필수품이다. 그런데 청결 유지를 위해 큰 돈을 들여 산 제품을 믿고 쓸 수 없다. 누구에게 물어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는다. 알아서 판단하고 아이가 더 아프면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아빠들은 ‘먹지 마시오’라 돼 있는 항균제를 눈 딱 감고 마시거나 밤늦게 청소를 하면서 홀로 들이켜야 한다. 그래서라도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조차 장담할 수 없다. 무책임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아빠들은 참담할 뿐이다.(5월30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