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편뉴스] “공부의 배신이라고 쓰고 다큐의 배신이라 읽는다(?)”

입력 2016-05-30 01:48 수정 2016-07-06 15:40
사진=EBS 다큐프라임 공식 블로그 캡처

공부의 배신 1회가 방송됐던 지난 16일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맘 카페, SNS에는 “EBS 공부의 배신 보신 분 있나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댓글에는 “이 방송 때문에 벌써부터 학원 알아보고 난리다” “잘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잘살고 못 사는 부모 밑에 태어나면 못 산다는 결말이 짜증난다”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혼란스럽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모르겠다” “남편과 함께 고민에 빠져 잠이 오지 않는다” 등의 댓글도 쏟아졌습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엄마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습니다. 내 아이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 나처럼 힘들지 않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일했던 워킹맘이나 잠자는 아이 얼굴에 조심스레 뽀뽀하고 출근했다가 잠든 아이 얼굴에 뽀뽀하러 잠시 들어온 워킹대디들은 ‘노력의 배신’이라며 씁쓸해 했습니다.

전업맘들도 마찬가지였죠. 내 자식을 위해 내 자신을 포기해 헌신했는데 돌아오는 건 공부의 배신이라니 허탈하기 그지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더 이상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잘 될 수 있다고 격려할 자신이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선 여전히 이런 얘기들이 와글와글, 아니 부글부글합니다. 그래서 [맘편뉴스]가 부모들의 불편한 마음에 작은 위안이라도 주고자 찾아봤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공부의 배신’이 정말 배신으로 끝난 것인가에 대해.

사실 공부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출발이 다르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으며 국민일보가 수없이 단독 보도했던 ‘로스쿨’이 ‘돈스쿨’ 이라는 기사를 통해 공부는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깨진지 오래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게 있었습니다. ‘2부-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에 나왔던 인터뷰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게 편집됐다는 겁니다. 인터뷰를 했던 학생들은 지난 23일, 25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렸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출신고에 따라 대학 내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과 많이 달랐죠. ‘갓-경영’이라는 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생은 “작가의 질문은 경영대를 부러워하는 타대생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고 나의 대답은 막상 대학에 오면 학과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어차피 고시 준비할 사람은 고시 준비하고 취업 할 사람들은 취업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주장했죠. ▶

연세대학교 학생도 비슷했습니다. 이 학생은 스펙은 특목고 친구들한테 밀리고 수능은 재수생한테 밀리고 내신은 농어촌 친구들한테 밀린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지적했는데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막상 대학에 와 보니 전공 앞에 다 같이 멍청이였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또 “신입생들의 열의에 찬 모습을 담겠다며 성경경영대 새터 영상을 촬영해 가서는 ‘외고 마셔’ ‘특목고 마셔’ 등의 말도 안 되는 내레이션과 함께 편집했다”고 주장했죠. ▶

이 같은 소식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습니다. 덕분에 해당 게시판과 영상 아래에는 사과방송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죠. 인터뷰를 왜곡하면서 제작진이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학생들마저 학벌주의에 빠져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과 절망을 느꼈던 부모들이 안도의 한숨을 쉰 거죠.

사진=파워 블로그 캡처

그렇다고 공부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현재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66.3%, 4년제 대졸자 1인당 평균 빚 1589만원, 에듀푸어 305만명… 이런 숫자들은 사실이니까요. 결과가 따라줘야 노력도 인정받는 현실도, 꿈을 꾸는데도 비용이 든다는 것도 맞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까지 부정할 순 없습니다. 불편한 진실이고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지만 현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현실이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미지숩니다. 학생들은 차별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니까요. 

사진=EBS 다큐프라임 게시판 캡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를 대처하는 학생들의 태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공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사과했죠. 경솔했던 발언으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고요. 물론 형식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이든 가식이든 문제의식이 있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사진=EBS 다큐프라임 홈페이지 캡처

제작진도 지난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를 올렸습니다. 학생들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결과를 추후에 공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날 연세대학교 학생회에서는 입장문을 통해 공식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쌍방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사진=연세대학교 페이스북 캡처. 연세대학교 상경.경영운영위원회는 지난 27일 왜곡 방송에 대해 공식입장을 표명하고 공개사과를 촉구했다.

연세대 학생은 “제작진이 인터뷰한 다른 학생에게 전화해 편집이 그렇게 되었고 그런 반응이 온 건 유감이다”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고려대학교 학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학벌주의라는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성찰해 볼 것을 유도한 방송 취지에 대해 공감하며 언론의 본분을 다했다 생각한다. 주제와 문제의식을 최대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편집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의견이 모두 그들과 같은 의견을 가진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잘못됐다”라고 적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BS 제작진은 직접 소통을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30일 국민일보에 전화한 제작진은 “현재 해당 학생과 대화 중이며 오해를 풀었다”며 “온라인 글만이 아닌 직접 만나 애기하는 책임있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죠.

학생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타인의 생각을 존중했습니다. 인터뷰한 학생 중에는 대학 내 서열화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죠. 자기 반성을 한 겁니다. 우리가 위안을 삼고 희망을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우리가 학생들을 보고 반성하고 배워야하는 것 또한 이게 아닐까요. 공부의 배신이  안긴 충격,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달라지길 바랍니다.

◇맘(Mom)편 뉴스는 엄마의 Mom과 마음의 ‘맘’의 의미를 담은 연재 코너입니다. 맘들의 편에선 공감 뉴스를 표방합니다. 매주 월요일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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