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청연루서 만난 국악신동 유태평양의 ‘흥보가’

입력 2016-05-29 22:00 수정 2016-05-29 22:28
유태평양(24). ‘국악신동.’ 일요일인 29일 오후 전북 전주한옥마을을 걷다가 그를 만났다. ‘뜻밖’이었다.

한옥마을과 서학동예술인마을을 잇는 남천교. 그 다리 위에 있는 멋진 누각 청연루(晴煙樓)에서 유씨가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유씨가 흥보가 박 타는 장면을 구성지게 표현하자 150여 청중의 귀와 눈이 일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어 그가 “여기 계신 분들에게도 1인당 3억5000만원씩 나눠주세”라며 즉흥 소리를 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연한 파란색 한복을 차려입은 유씨는 이날 단가 ‘고왕금래’를 시작으로 흥보가 중 ‘흥보가 박 타서 부자 되는 대목’,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 춘향가 ‘사랑가’ 등의 4곡을 기가 막히게 불러 제쳤다.

“얼쑤” “좋다” “잘한다” 널찍한 마루에 편히 앉은 청중들은 추임새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일부는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2016 전주대사습놀이’가 마련한 특별공연의 하나였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우리나라 최대의 국악잔치. 지난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진행되는 올해 잔치에서도 한옥마을 곳곳에서 특별행사가 열렸다.

청연루에서 마련된 이 공연은 ‘뜻밖의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이틀간 펼쳐졌다. 이번 공연엔 유씨를 비롯해 ‘청음’ ‘소리애’ ‘벼리국악단’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유씨의 공연 앞뒤로 탁 트인 누각 무대에 올라 신명나는 시간을 연출했다.

40여분의 ‘짧은’ 공연을 마치고 임시 대기실로 내려온 유씨에게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숨을 고르던 유씨는 반갑게 맞이하며 “저도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공연하게 돼 좋다. 길을 걷던 사람들도 쉽게 다가올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을 이었다.

유씨는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국악신동. 정읍에서 태어난 유씨는 아버지 유준열(전 정읍시립국악단장)씨의 영향으로 어려서 사물놀이, 아쟁, 가야금을 익혔다. 1998년 여섯 살이 되던 해 3시간 30분간 판소리 ‘흥보가’를 최연소로 완창해 큰 화제를 모았다.

조통달, 성창순 명창을 사사하며 탄탄한 내공을 쌓았다. 2001년 한국관광공사 홍보대사를 하며 72개국서 공연을 했다. 2004년 12살 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타악기의 본고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건너가 4년간 공부했다.

2010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하고, 2년 뒤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일반부 금상을 받았다. 지난해 전북대 한국음악과를 졸업한 뒤 올해 1월 국립창극단원이 되었고 지난달 국립극장에서 흥보가를 완창했다.

5월의 마지막 주말과 휴일, 한옥마을을 찾은 이들은 청년이 된 유태평양의 모습을 ‘뜻밖에’ 확인한 것은 물론 귀를 호강시킬 수 있었다. 유씨는 “앞으로 예술가로서 대중을 만나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대중이 좋아하는 소리판을 많이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유씨 옆에서 북을 쳐준 고수는 유씨의 친동생이었다. 동생의 이름은 휘찬(21). 형의 뒤를 이어 전북대에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행사 사회를 본 정희현(1% 지식나눔 대표)씨는 전날 한 관객이 그 동생을 보고 농담을 던진 상황을 일러줬다. “혹시 이름이 ‘대서양’이냐 아니면 ‘인도양’?” 덩치가 큰 동생은 말없이 씨익 웃기만 했다고 정씨는 덧붙였다. 글·사진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