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로 30일 출범하지만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였던 13대 때와는 정치 환경이 상당히 다르다. 13대 국회에선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막후 정치’가 활발했다. 반면 20대 국회에선 최소한의 정치적 타협마저 실종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거대 野 3당’ 힘 발휘됐던 13대 국회=1988년 4월 실시된 13대 총선은 평화민주당(70석)과 통일민주당(59석), 신민주공화당(35석) 등 야당이 174석을 가져갔다.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125석을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임기 후반 여소야대 국회에 맞닥뜨린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부터 야 3당의 협공에 직면해야 했다.
13대 국회 초반 야 3당은 공조 체제를 구축하며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이는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인 노태우정권을 견제할 힘을 야당에 부여했다는 ‘총선 민의’를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야당은 13대 총선이 치러지고 3개월 뒤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국회의 국정감사권도 16년 만에 부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이 밀어붙인 국정감사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 여야의 재협상을 종용했지만 법안 통과를 저지시키진 못했다.
국회법 개정을 통해 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도 13대 때였다. 이에 힘입어 ‘5공 실세’들이 국회 증언대에 줄줄이 불려나왔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 활동이 탄력을 받게 됐다.
민정당은 야당과의 ‘스킨십’으로 실마리를 풀려 했다. 당시 여당으로선 야당에 '5공 청산'을 내줬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이던 중간평가를 피해갈 수 있었다.
◇‘청와대 강경기류’에다 ‘여당 내홍’까지 겹친 20대 국회=야권에선 총선 참패 이후에도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청와대에 협치 가능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회의론까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대 국회를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 이후 대여(對與) 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쥐었다.
특히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기점으로 ‘2야 공조’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법정 시한을 코앞에 둔 20대 국회 원 구성 협상부터 여야가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대 국회 때 통과되지 않았던 노동개혁 4법과 경제활성화 법안을 정부·여당이 또 다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마찰도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와 7차례 회동을 가졌지만 되레 그 이후 정국이 얼어붙기도 하는 등 야당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한계를 보여 왔다. 여권의 한 인사는 29일 “과거에는 여러 경로의 비밀 회동을 통해 꼬인 정국이 갑작스레 풀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치의 묘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강력한 대선주자를 키워내지 못한 상황에서 계파 갈등만 거듭하는 모양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 13대 국회와 차이점은
입력 2016-05-29 16:52 수정 2016-05-29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