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포스트잇 글, 책으로 나온다

입력 2016-05-28 01:30 수정 2016-05-30 09:25

“화장실을 같이 가달라는 게 아닙니다. 혼자 가도 안전하고 싶다고요.”

“어떡해야 살고 싶다는 말들이 싸우자는 말로 들리는 걸까.”

“여자친구에게 ‘너는 조심해’라고 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여성혐오범죄“

“피해자는 여자라서 죽었습니다. 나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모든 한국 여자를 위한 하나의 묘지 같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짧은 치마 입지 마라. 공중화장실 조심해라. 저는 뭘 더 조심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시민들이 써서 붙인 포스트잇 문구들을 담은 책이 나온다. 다음 달 초 출간되는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이 그 책이다.

출판사 나무연필은 27일 “한 여성의 살인 사건 자리에 용기를 내어 나아가 깊은 추모와 함께 이 사안에 대한 절실한 생각들을 토로한 글들”이라며 “이 1004개의 글들이 죽은 이를 애도하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또한 동시대에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1차 자료로서 차후의 연구에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 노래방 지하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낯선 30대 남성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여성혐오 살인’으로 명명됐고, 강남역 10번 출구는 피해자에 대한 추모의 공간이자 여성혐오 현실을 고발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18일 오전부터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추모와 성찰, 다짐 등의 내용을 적어 10번 출구 외벽에 붙이기 시작했고, 23일 서울시청이 포스트잇을 보존하기 위해 시청 1층 시민청으로 옮기기까지 1004건이나 모아졌다.

이 포스트잇은 이동되기 전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에 의해 일일이 채록됐다. 출판사 측은 이렇게 채록된 기록들을 교정만 해서 수록했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이 책에 “사건을 분석하는 전문가의 언어도 있지만 수많은 추모객이 쏟아낸 진심 어린 말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욱 소중한 일”이라며 “평범한 이들의 집단적 성찰이 이뤄지고 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별과 인권 등 우리 사회의 윤리를 돌아봐야 한다”고 추천사를 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