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이유로 여성 교사의 손을 잡기를 거부한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스위스 사회에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스위스 북부 바젤란트주 다윌에서 여성 교사와 악수를 하기를 거부한 시리아 난민 형제에게 주정부가 악수를 강제하기로 결정했다고 26일(현지시간) 전했다. 만일 아이들이 끝까지 이를 거부할 경우 부모는 벌금 5000스위스프랑(약 600만원)을 물게 된다.
스위스에서 아이들과 교사가 수업 시작 전과 종료 뒤 악수를 나누는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예절이다.
애초 이 학교에서는 해당 아이들에게 예외를 적용했다. 14세에서 16세 사이로 알려진 이 형제는 이슬람 교리 상 가족이 아닌 이성과 신체적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로 여성 교사와 악수를 거부했다. 형평성을 위해 학교 측은 이 아이들이 남성 교사와도 악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침을 내려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스위스 교육계에서는 거센 반발이 나왔다. 사민당 소속 시모네타 소마루가 법무장관은 “스위스 문화에서 교사와 학생이 악수를 하는 것은 중요한 관습”이라며 난민 학생들도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 젬프 스위스 교원노조 위원장 역시 “학칙은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이번 조치는 잘못된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비칠 수 있다”면서 “난민 아이들 역시 살아가면서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동료들과 악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풍이 일자 학교 측은 지방 정부에 결정을 맡겼다.
지난 25일 바젤란트주 주정부는 “통합과 성평등이 공공선인데 반해 학교 측의 결정은 학생들 개인의 입장만을 고려한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아동들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주 정부는 악수를 하도록 하는 게 해당 아동들의 종교적 신념을 침해하는 것이라 인정했으나 이 조치가 이슬람의 중심교리를 직접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또 아이들의 미래 사회생활에서도 악수가 중요한 사회적 제스쳐가 된다고 이유를 들었다.
NYT는 이번 사건이 유럽으로 건너온 보수적 이슬람교도 난민들이 유럽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문화 충돌을 겪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스위스 총선에서는 난민 수용에 반대 입장을 내놨던 우익 성향 대중당이 승리했다. 2009년 스위스 시민들은 이슬람 기도원인 미나레츠 건설을 두고 벌어진 국민투표에서 이를 ‘끔찍한 이슬람화’라고 반대한 대중당의 손을 들어줬다. 스위스에서 종교에 대한 관용이 퇴보됐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반이슬람 정서가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약 35만명 규모에 이르는 스위스 내 이슬람 사회 지도자들은 이번 논란이 일어난 뒤 여론을 의식한 듯 이성과 악수하는 게 이슬람 율법적으로도 용인된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그러나 주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스위스 이슬람중앙의회 역시 이번 결정에 대해 “월권행위”라며 비판하면서 개인 간의 신체접촉까지 강요하는 건 전체주의적 태도라고 일갈했다. 이 단체는 해당 조치에 대해 법적 대응할 예정이다.
아이들의 부모는 지난 2001년 스위스에 도착해 살고 있으며 이미 난민 신분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결국 형사 조치로 마무리되어 슬프다”면서 “스위스에서 다른 사람 코를 부러뜨려도 5000스위스프랑이라는 거금을 벌금으로 내진 않는다”며 형평성에 어긋남을 호소했다.
이 형제는 지난달 독일 일간 디벨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악수를 거절하는 건 여성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