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칵 뒤집힌 국회, 얼어붙은 정국

입력 2016-05-27 16:42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재의 요구)한 27일 국회는 발칵 뒤집혔다. 야3당 지도부는 아침 일찍 만나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하기로 합의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고유 권한이라고 강조하면서 당초 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한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입법부와 행정부, 여야간 대치 전선이 만들어지면서 20대 국회는 시작부터 삐걱대게 됐다.

박 대통령은 임기 중 두 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모두 국회의 행정부 견제를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지난해 6월 재의를 요구했던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가 정부 시행령이 법률 취지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였다. 박 대통령은 행정 입법권 침해라며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국회는 본회의에서 재의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당시 160석을 차지하고 있던 새누리당이 제동을 걸었다. 표결에 집단 불참해 정족수 미달로 재의결이 무산됐다.

20대 국회는 상황이 달라졌다.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몸집이 줄었다. 더불어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 등 야3당을 합하면 167석이다. 무소속(11석)이 가세하고 여당 내 ‘반란표’가 더해지면 재의결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국회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임기와 함께 폐기되는 것으로 결론 나면 야권의 대여 공세는 한층 격렬해질 전망이다.

야당은 이날 “정부의 전면선 선포”라고 공세의 고삐를 바짝 쥐었다. 국회 정론관은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는 논평 발표로 내내 북적였다. “꼼수 행정의 극치”(더민주 기동민 원내대변인),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권 행사”(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협치가 잘 이뤄질 것인지 걱정이 된다”고 날을 세웠다.

새누리당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번 주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원내대표단 회의가 긴급하게 소집됐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9대 국회의원들이 의결한 법안을 20대 국회의원들이 재의결하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이런 정 원내대표에 대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오늘 아침 정 원내대표를 우연히 만나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조금 강경해진 기분”이라며 “‘청와대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구나’ 하는 감을 받았다”고 했다. 여야 협치 분위기도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정 의장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지금 본회의에 부의되고도 의사일정으로 상정되지 않고 폐기되는 법안이 더 있다”며 “정 의장은 왜 이런 법들은 두고 본인이 추진했던 국회법 개정안만 독단적으로 상정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여야 관계가 틀어지면서 원 구성 협상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국회법이 정한 시한을 못 지키는 것은 물론 헌정 사상 가장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정 민생경제점검회의 등 협치 정국에서 만들어진 각종 협의체도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