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협치' 정국이 '대치'정국으로

입력 2016-05-27 16:00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상시 청문회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에 이어 상시 청문회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오는 30일 개원하는 20대 국회도 ‘협치’가 아닌 ‘대치’ 상태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국회 상임위원회의 청문회 활성화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재의 요구안(거부권)을 의결했다. 이어 에티오피아를 국빈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재의 요구안을 현지에서 전자결재 방식으로 재가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해 6월25일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제도는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은 19대 국회 사실상 마지막 날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꼼수’라고 비판하며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재의결을 20대 국회에서 함께 추진키로 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한 것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또 박 대통령 순방기간 이뤄진 임시국회회의 거부권 의결을 두고 “대리 거부권” “꼼수 국무회의”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5·13 청와대 회동의 협치 정신을 찢어버린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박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새벽 같이 마치 한강다리를 건너는 듯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군사정변’ 상황에 빗대기도 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오히려 상시 청문회법을 두고 20대 국회에서 여야가 충돌하는 부담을 정부가 덜어줬다”며 “20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다루는 건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19대 국회가 의결한 것을 20대 국회가 재의결하는 게 가능한 지를 놓고 여야간 법리 논쟁이 뜨겁게 일 것으로 보인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