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밝힌 거부권 행사 사유

입력 2016-05-27 15:22

정부는 27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의 과도한 통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임을 분명히 했다. 여소야대 국면을 맞을 20대 국회에서 상시 청문회의 활성화로 야기될지 모르는 거대 야당의 국정 견제를 미연에 방지해 임기 말 국정동력을 유지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임시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의결하면서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위헌의 소지가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 총리는 “행정부의 모든 업무가 언제든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국정에 큰 부담을 초래하는 것이 부득이하고 결국 국민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 법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소관 현안을 청문회 대상으로 포괄 규정해 행정부의 모든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더불어 행정부 뿐 아니라 사법부 또는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에 대한 이중 삼중의 통제 수단으로 작용해 국정운영에 과중한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상시 청문회가 개최될 경우 자료제출이나 증인 출석 요구 등이 과도하게 제기돼 정부 부담이 가중되고 행정행위의 중립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염려했다. 정부는 야당이 이를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 정부 마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권 행사는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브리핑에서 정부의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 결정에 대해 “국회로부터 법률을 이송 받아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며 심도 있게 검토한 결과 지난 26일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법제처는 “헌법이 규정한 대 행정부 통제수단을 벗어나 새로운 수단을 신설하는 것은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되지 않고, 현행 헌법상 국정조사제도를 형해화(유명무실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관 현안’이 포괄적이어서 국정 및 기업 등에 과중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주요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라는 점을 들어 재의요구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앞서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23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관 현안 조사는 국회 상임위별로 전 부처를 포괄해 사실상 국정 전반에 대한 청문회를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특히 “청문회가 국정조사 국정감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격상되면 정부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표하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