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정책에 각 세우며 존재감 과시한 반기문

입력 2016-05-26 16:06

제11회 제주포럼 참가차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틀 연속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각을 세우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평화 메신저’의 권위를 드러내는 한편 ‘친박(친박근혜) 대선 후보’ 평가를 반박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반 총장은 26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북한에 더 이상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는 물론 주변 지역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우호관계가 중요하다”면서 남북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 총장은 전날 관훈클럽 간담회에서도 인도적 지원 병행을 통한 긴장 완화 노력을 강조했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반 총장의 대북 인식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노선이 확연히 다르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비핵화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초강경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 프로젝트 역시 대부분 ‘올 스톱’시켰다.

반 총장의 이번 발언은 유엔 사무총장이자,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반 총장은 지난해 5월과 12월 개성공단을 포함해 두 차례 방북을 추진했지만 북한 내부 사정 등으로 모두 무산됐다. 반 총장은 북한을 방북해 한반도에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 관훈클럽 간담회에서도 “지난해 기회가 상당히 무르익었는데 이루지 못했다. 남북문제는 숙명”이라며 한탄했다. 반 총장이 방북할 경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는 1979년 쿠르트 발트하임 총장, 93년 부트로스 갈리 총장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이와 함께 잠재적 대권 주자로서 경색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정부는 북한이 최근 잇따라 제시한 군사회담에 대해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이라”며 모두 거부했다. 또 지난해 반 총장이 방문하려던 개성공단의 운영을 지난 2월 전면 중단하는 등 반 총장과 정부 입장은 자꾸 엇갈렸다. 지난해 말 반 총장의 방북 추진 당시에도 정부는 “미리 실무 협의된 사실이 없다”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입장 변화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닫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위해선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먼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대화를 위한 대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정부는 (북한의) 영유아나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 하지만 시기와 범위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추후 신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정부 당국자는 “현재 반 총장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제 3국인”이라며 그의 비판에 불쾌함도 내비쳤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