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최애’ 영화, 아가씨… 그 이유있는 자신감

입력 2016-05-25 19:50 수정 2016-05-26 08:32
뉴시스

“칸영화제 갔다가 고배만 마시고 빈손으로 돌아온 박찬욱입니다.”

박찬욱(53)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수상 실패 따위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했다. 25일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아가씨’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그렇게 들렸다.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03)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국내 복귀작이다. 아가씨에는 박 감독 특유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다. 파격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화면은 그대로다. ‘19금’ 수위를 높이는 반면 잔혹함을 덜어냈다는 게 좀 다르다.

아가씨(김민희)와 하녀(김태리)를 주축으로 매혹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아가씨와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권위적인 이모부(조진웅)가 함께 사는 대저택에 재산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사기꾼 백작(하정우)과 하녀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이들의 관계가 이 영화의 묘미다.

영화 '아가씨' 스틸컷

아가씨는 원작인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을 배경으로 옮겨왔다. 일본풍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장인정신이 깃든 세트장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식·일식·양식이 한 데 아우러진 건축물을 완성해냈다.

그의 공로는 칸도 인정했다. 미술, 촬영, 음향, 영상 등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기술 아티스트에게 주어지는 벌칸상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영화인으로서는 최초이며, 미술감독이 단독으로 수상한 것 역시 처음이다.

박 감독은 “(벌칸상은) 류 감독이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꿈이라고 하더라”며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경력 전체에 대한 인정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제 공도 조금은 들어있지 않겠느냐. 저도 덩달아 뿌듯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영화 '아가씨' 포스터

아가씨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야기 구조다.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난 뒤 반전이 등장하고, 이후 같은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박 감독은 “원작을 보고 반했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며 “동일한 사건이라도 진실을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 내가 원래 이런 구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 끝부분에 등장하는 손가락 절단 신은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보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전작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긴 하다.

“제 영화치고는 아주 얌전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이게 뭐냐’고 실망했다는 분들도 있고요(웃음). 그런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분들도 있겠지만, (손가락이) 잘리는 순간이나 잘라진 단면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소리나 표정으로 대신했으니 이 정도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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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아가씨는 제 작품들 중 제일 공을 많이 들이고 정성을 쏟은 영화”라며 “어떤 작품보다 정이 가고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분명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나아가 그가 바라보는 궁극적인 목표점은 단순한 흥행이 아니었다. 박 감독은 “경력 초기에는 어떻게든 손님(관객)이 많이 오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지만, 몇 편 만들다보니 영화가 오래 기억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지더라”며 “10~20년 뒤 자식 세대도 봐주는 영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게 창작자로서의 가장 큰 소원”이라고 전했다.

아가씨는 다음 달 1일 개봉된다. 당연히 청소년 관람불가. 144분.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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