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보다 판사님이 좋아요" 예비 법조인 꿈꾸는 13살 아이들

입력 2016-05-24 17:49
24일 오전 서울동부지법 15호 법정에서 서울 마장중학교 학생들이 모의법정에 참여하고 있다. 허경구 기자

“오늘은 설현보다 판사님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미래 법조인을 꿈꾸는 서울 마장중학교 1학년 학생 22명이 24일 오전 서울동부지법 15호 법정에 모였다. 법원은 지난 4월부터 관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법원과 경찰, 구치소 등을 찾아 각 기관의 역할을 배우고 업무 일부를 체험하게 된다.

법원을 찾은 학생들은 활기가 넘쳤다. 이들 모두는 법조인이 되고 싶어 법원을 찾았다고 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판사와의 대화, 모의재판 등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한껏 기대에 차 있었다. 김재호군은 “제 장래희망은 변호사다. 하지만 검사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모의재판에 검사 역할로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법원에 처음 와봤다고 했다.

오전 10시쯤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최민영 실무관이 진행한 법원 강의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권력을 왜 나눴을까요?” “독재를 막기 위해서요.” 3권 분립을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초대 대법원장을 묻는 질문에는 ‘김구’ ‘김흥국’ 등을 외치고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최 실무관이 “정답은 가인 김병노 선생이다. ‘정의를 위해 굶어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정의의 변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하자 금세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판사는 뇌물을 많이 받나요?” 학생들은 궁금한 내용들을 거침없이 물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민사12부 조건주 부장판사는 “이 일은 월급도 많지 않고 유일하게 남는 건 자부심과 떳떳함이다. 그 자존심을 돈으로 사려고 한다면 화날 것 같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면서도 조 판사가 질문에 대답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양손을 모아 깍지를 끼는 등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법정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모의재판이었다. 시작 전부터 기대에 들뜬 편지훈군은 변호사 역을 맡은 친구에게 “검사가 뭔지 보여줄게. 나 진지하면 무서워진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학생들은 “이거 잘해야 해”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진지한 얼굴로 대본을 맞춰봤다.

모의재판에서 학생들은 각각 판사와 검사, 변호인 등의 역할을 맡았다. 재판장 역을 맡은 황규연군은 차분한 목소리로 “지금부터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형사부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모의재판에 사용된 사례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충분히 겪을법한 이야기였다. 학생들끼리 싸우는 장면을 한 학생이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 교내 게시판에 올린 게 발단이었다. 가해 학생이 악플 등으로 우울증을 앓아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다. 가해 학생은 오히려 피해자가 돼 동영상을 유포한 학생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학생들은 받아든 대본을 진지하게 읽으며 재판에 참여했다. 방청석에 앉은 배심원들도 친구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중간 중간 실수를 해도 크게 웃기보다는 비교적 법정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모의재판이 끝나고 형사11부 김웅재 판사가 학생들과 자유토론을 진행했다. 유죄와 무죄를 둘러싼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재판부 역을 맡은 3명의 학생들은 고민에 빠졌다. 3분간 토의를 마친 뒤 황군은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유죄입니다”라고 말했다. 황군은 “미래에 판사가 되고 싶었는데 판결하려니 어렵다는 걸 느꼈다. 재판부의 의견을 모아 유죄를 선고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한 법조인을 실제로 만나본 학생들은 앞으로의 포부를 말했다. 김재호군은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보면서 변호사를 꿈꾸게 됐다”며 “주인공처럼 약한 사람을 변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쁜 사람이 변호를 해 달라고 하면 안 해줄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전예현군은 “드라마를 보면 착한 사람들이 유죄 받는 경우가 많다.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 같다”며 “공정한 재판을 이끄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