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선배 복보다는 후배 복이 많았다. 세종 내려와서도 그랬다. 기자 4명이 7개부처 3개청과 산하 공공기관까지 맡는 광개토대왕 나와바리 덕에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지만 후배들하고 즐겁게 원없이 기사를 썼다. 마음맞고 능력 있는 후배들 덕에 세종팀은 이달의 기자상도 두 번 탔다.
어제 인영이 귀가 대비 대청소에서 후배 2명은 기사 못지않게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영국 어학연수 시절 출장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는 도경이는 전문가였다. 나도 한 청소 한다 생각했지만 잽도 안됐다. 욕실, 베란다, 장난감 등 도경이가 손만 대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선배 도경이보다 못했지만 팀 막내 성민이는 시키는 것은 잘했다.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청소를 마치고 집 근처 곱창 집에서 소주 한 잔 했다. 도경이는 외교부 출입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와 일하면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다며 감격(?)해했다. 정년퇴직 후 도경이와 깉이 '리앤브라더스'라는 출장청소업체를 차릴까 싶다. 병원 근처에 사는 주화는 아내 옷을 빨아 갖다줬다고 한다. 확진 판정 받은 뒤 가장 먼저 병원에 달려와 위로의 말을 건넨 사람도 팀 후배 민영이였다. 참 고마운 후배들이다.
오늘 일어나 영상전화로 청소한 집을 보여주니 병원에 있는 인영이가 “우와~우와~”한다. 컨디션도 좋아 주사 맞을 때 빼고는 잘 논다. 어제오늘 고민은 1차 항암을 끝낸 뒤 골수와 척수검사를 전신마취로 할지 마취없이 생으로 할지였다. 전신마취는 부작용과 어린 나이에 자주하면(입원 후 벌써 2번이나 했다) 안 좋다는 말에 걱정이고, 울부짖는 아이의 사지를 잡고 생으로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프로포폴을 쓰는 수면 검사가 중간 격으로 좋을 듯한데 수면 검사는 외래만 되지 입원환자는 안된단다. 이 역시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민 끝에 인영이의 기억에 고통이 최대한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전신마취를 택했다. 이래저래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화창한 주말 오후다.
#지난번 세종청사에서 헌혈을 해준 분들의 헌혈증을 전달받았다. 하나하나 보면서 42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직접 보지 못하니 여기에서라도 말해야 지..“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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