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빠다9>2월19일 진짜의사

입력 2016-05-23 22:49
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이틀 전부터 윤영이가 38도가 넘는 고열 상태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맞으면 37도로 떨어졌다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38도다. 오늘 새벽에는 38.8도까지 올라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백혈병 환자들한테 고열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증상이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 어딘가에서 열을 일으키는 세균이 활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퇴원을 해서도 열이 38도 이상 오르면 곧바로 응급실로 가야 되는 게 이 병이다.
열이 나면서 한동안 풀어졌던 긴장의 끈이 다시 조여지는 느낌이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지만 아직까지 열의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의사는 항암치료를 하면 백혈구수가 줄어들어 면역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고열은 일어날 수 있으며, 고열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70~80%는 열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설명에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옆 침대의 고참 보호자가 아내에게 면역촉진제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면역 촉진제는 면역지수가 20(1000이상이 정상)밖에 안 되는 인영이의 면역력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3일 전부터 매일 팔뚝에 맞는 주사다. 억지로 백혈구를 만드는 게 인영이 몸에 벅차서 열이 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항암치료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있을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보다 훨씬 와 닿았다. 인영이는 촉진제를 맞고 난 뒤 몸을 부들부들 떠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병실 고참들에 따르면 ‘자연스런’ 증상이란다.
인영이가 아빠 찌찌(엄마는 쭈쭈)를 만지며 웃고있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는 행동이다.

인영이는 최근 따르는 언니가 생겼다. 머리카락이 없고 키가 작아 중학생정도 돼 보였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20살 이었다. 어릴 적부터 앓던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소아병동에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종종 어른스러워 보이는 환자들이 있다. 인영이는 골수이식을 하고 회복 중인 이 언니를 핸드폰에 헤드셋을 꼽고 한 시간 넘게 휴게라운지에서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 이 언니도 인영이를 예뻐하고 잘 놀아주지만 내일이면 퇴원한다고 한다. 인영이가 언니를 찾아 헤맬 것 같아 걱정이다.
무균병동은 기본이 5인실이다. 홈보이로 뽀로로 보기를 즐겨하는 윤영이를 위해 헤드셋을 사줬다. 자기 것인줄 알고 늘 소지하고 다닌다.

인영이 ‘진짜’ 언니 윤영이를 보러 오후 늦게 세종에 내려왔다. 3주 만에 본 윤영이는 조금 마른 느낌이다. 저녁때 집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시켜주고 같이 놀아줬다. 내일은 서울로 데려가 그리운 엄마와 상봉도 시켜줄 예정이다. 윤영이의 8년 인생에 3주 넘게 엄마 얼굴을 못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생 병이야 약 먹으면 나을 텐데 여자애가 머리를 밀어서 그게 더 걱정이라는 ‘철없는’ 첫째 딸을 보니 인영이만 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영이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내일은 이유 없이 잡히길 기도해본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