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부터 윤영이가 38도가 넘는 고열 상태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맞으면 37도로 떨어졌다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38도다. 오늘 새벽에는 38.8도까지 올라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백혈병 환자들한테 고열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증상이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 어딘가에서 열을 일으키는 세균이 활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퇴원을 해서도 열이 38도 이상 오르면 곧바로 응급실로 가야 되는 게 이 병이다.
열이 나면서 한동안 풀어졌던 긴장의 끈이 다시 조여지는 느낌이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지만 아직까지 열의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의사는 항암치료를 하면 백혈구수가 줄어들어 면역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고열은 일어날 수 있으며, 고열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70~80%는 열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설명에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옆 침대의 고참 보호자가 아내에게 면역촉진제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면역 촉진제는 면역지수가 20(1000이상이 정상)밖에 안 되는 인영이의 면역력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3일 전부터 매일 팔뚝에 맞는 주사다. 억지로 백혈구를 만드는 게 인영이 몸에 벅차서 열이 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항암치료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있을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보다 훨씬 와 닿았다. 인영이는 촉진제를 맞고 난 뒤 몸을 부들부들 떠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병실 고참들에 따르면 ‘자연스런’ 증상이란다.
인영이는 최근 따르는 언니가 생겼다. 머리카락이 없고 키가 작아 중학생정도 돼 보였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20살 이었다. 어릴 적부터 앓던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소아병동에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종종 어른스러워 보이는 환자들이 있다. 인영이는 골수이식을 하고 회복 중인 이 언니를 핸드폰에 헤드셋을 꼽고 한 시간 넘게 휴게라운지에서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 이 언니도 인영이를 예뻐하고 잘 놀아주지만 내일이면 퇴원한다고 한다. 인영이가 언니를 찾아 헤맬 것 같아 걱정이다.
인영이 ‘진짜’ 언니 윤영이를 보러 오후 늦게 세종에 내려왔다. 3주 만에 본 윤영이는 조금 마른 느낌이다. 저녁때 집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시켜주고 같이 놀아줬다. 내일은 서울로 데려가 그리운 엄마와 상봉도 시켜줄 예정이다. 윤영이의 8년 인생에 3주 넘게 엄마 얼굴을 못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생 병이야 약 먹으면 나을 텐데 여자애가 머리를 밀어서 그게 더 걱정이라는 ‘철없는’ 첫째 딸을 보니 인영이만 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영이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내일은 이유 없이 잡히길 기도해본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