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전략 선택의 기로…완충장치 없어 대화 파상공세 무위로 끝날 시 ‘지뢰밭' 상존

입력 2016-05-23 17:02

정부가 북한에 비핵화 여부 입장표명을 요구하며 반격에 나섰다. 북한이 잇단 대화 공세로 만든 ‘평화 대 긴장’ 프레임에서 벗어나 ‘핵보유 대 비핵화’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정부는 북한의 제안이 남북 관계 개선을 빌미로 실제론 북·미 협상을 진행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 국제적 골칫덩이인 북핵 이슈를 남측을 활용해 돌파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로 만들어진 변곡점에서 남북간 양자 대화와 미·중을 포함한 다자 대화를 통해 북핵 이슈를 진전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국방부는 23일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통지문을 서해군통신선을 통해 보냈다고 밝혔다. 문상균 국방부 대면인은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군사회담을 제안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며,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입장표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화 제의를 하면서도 ‘핵포기와 같은 부당한 전제조건’ 등의 표현을 통해 핵포기 의사가 없음을 에둘러 표현하자 정확한 입장을 내놓으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 남측이 북한의 막연한 평화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로 해석된다. 섣불리 우리가 양자 대화에 매몰돼 대북 국제 재제에 균열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 만약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 의사 등 전향적 답변을 해올 경우에는 국제 여론을 남측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양자·다자간 주도권을 한꺼번에 틀어쥐고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측의 제안을 무시하지 않고 역제안을 한 것은 마냥 대화를 하지 않을 경우 당분간 북측 도발에 휘둘릴 ‘지뢰밭’이 산적해 있어서다. 당장 다음달 꽃게 조업철을 맞아 연례행사처럼 재현돼 온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이어 한미연합훈련과 6·15 공동선언 기념일, 8·15 등 ‘시비거리’도 즐비하다. 북한이 자신들의 유화 제스처가 철저하게 무시당할 경우 ‘우발을 가장한’ 국지도발 국면을 조장해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 간 대화 채널이 꽉 막힐 경우 사소한 군사적 긴장에도 충돌할 수 있는 만큼, 북한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통신선을 활용해 답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이 벌어지고 사태 수습에 급급해 딸려가는 모양새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조급함을 역으로 이용, 우리 정부의 책임소재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군사회담 제안에 이어 각급 단계의 포괄적 대화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나선 점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호재다. 대응 가능한 선택지가 풍부해졌을 뿐 아니라 ‘실무급 협상’으로 범주를 제한하면서 미·중 등 국제사회에 “충돌을 막기 위한 실무 회담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할 명분도 챙길 수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