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71)- 영화 낙수(落穗) Ⅱ>
영화 낙수(落穗)를 전달하다보니 빠뜨린 것이 많았다. 그래서 속편 형식으로 영화 낙수를 몇 개 더 소개한다.
--‘오스틴 파워스’ 시리즈로 유명한 코미디 배우 마이크 마이어스가 주연한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I Married an Axe Murderer, 1993)’는 결혼공포증이 있는 시인이 마침내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결심한 여자가 하필이면 도끼 연쇄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다. 그러나 비평과 흥행 모두 실패했다. 한마디로 태작(?作)이란 얘긴데 무슨 이유에선지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정거장에 이 영화를 줄기차게 비치해놓고 있다.
--‘스타 워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특수효과와 신화적 스토리텔링 구조, 기상천외한 온갖 형태의 외계인 등장, 기록적인 흥행 등 많은 ‘유산’을 남겼으나 가장 중요한 유산은 ‘후속 장사’였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7년 당시 배급사인 20세기 폭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 장사의 권리를 감독 조지 루카스에게 그냥 넘겼지만 루카스는 파생 상품 제작 판매 및 속편 제작 등을 통해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였다.
-- 마이클 더글러스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안겨준 명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는 원래 아버지 커크 더글러스의 작품이 될 뻔 했다. 영화의 원작인 켄 케지의 소설 판권을 사들인 게 1960년대 초 커크 더글러스였기 때문. 그러나 그는 당시 자신이 주인공 맥머피 역을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 묵혀두었다가 나중에 아들 마이클에게 영화화권을 넘겼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그러나 주연은 잭 니콜슨에게 맡기고 자신은 제작만 담당했다.
--톰 헐스는 ‘아마데우스(1984)’에서 모차르트 역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 4시간씩 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피아노 치는 연습을 했으나 막상 영화에는 전문 연주자의 연주가 들어갔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의 실존 무법자 부치 캐시디가 이끈 갱단 이름은 ‘와일드 번치(Wild Bunch)’였다. 그러나 조지 로이 힐 감독은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샘 페킨파가 만든 유혈 낭자한 서부극 ‘와일드 번치(1969)’의 무법자들과 혼동을 줄까 우려해 ‘벽의 구멍(Hole in the Wall : 속어로는 ‘좁아터진 집구석’이라는 뜻) 갱단’이라는 가공의 이름을 지어냈다.
--나중에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영화에서 담배를 피우는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단 한번. 앨프리드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 1954)’에서였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바탕으로 월남전을 그린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은 단연 최악의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우선 주인공 윌라드 대위역을 처음에 맡았던 하비 키틀은 촬영 중 해고됐고, 대타로 기용된 마틴 쉰은 심장마비에 걸려 죽을 뻔했다. 또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아도 영화의 지주격인 말론 브랜도는 과체중으로 운신이 곤란할 정도였고, 영화를 찍을 준비도 전혀 돼있지 않았다. 게다가 필리핀 로케이션 중 태풍이 몰려와 모든 세트를 쓸어가 버렸다.
그런가 하면 배우들의 고집이 현재 우리가 보는 영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디어 헌터(1978)’에서 영화의 중심인 4명의 고향 친구 중 하나인 존 카잘(‘대부’의 둘째 아들역)은 촬영 중 병에 걸렸다. 제작사는 그를 자르고 대타를 기용하려 했으나 여주인공인 메릴 스트립이 그러면 자신도 그만두겠노라고 완강히 버텨 살아남았다.
--연쇄살인범 추적을 그린 ‘세븐(1995)’의 제작사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상자 안의 잘린 머리’ 부분을 삭제하려 했으나 두 주연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그러면 영화 프로모션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우겨 잘리지 않았다.
반대 경우도 있다,
--멜 깁슨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브레이브 하트(1995)’는 깁슨이 주연과 연출을 맡았지만 당초 그는 연출만 하려 했다. 주인공 윌리엄 월러스역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사는 그가 주연을 맡지 않으면 제작을 포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결국 관객들은 깁슨의 월러스를 볼 수 있게 됐다.
--할리우드 뮤지컬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비는 사랑을 타고(Singing in the Rain, 1952)’의 여주인공 데비 레이놀즈의 술회에 따르면 이 영화를 찍는 것은 ‘아기를 낳을 때 만큼’이나 힘들었다고. 왜? 한없이 부드럽고 선량해 보이는 남자주연 겸 안무 연출 진 켈리가 촬영장에서는 그런 폭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남녀주연 빌리 크리스털과 메그 라이언은 스크린 상 기가 막히게 잘 맞는 멋진 커플이었지만 촬영장에서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한 앙숙이어서 영화를 찍는 내내 아웅다웅 했다고.
--뮤지컬의 여왕이랄 수 있는 줄리 앤드루스는 조지 버나드 쇼의 작품 ‘피그말리온’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1964)’의 여주인공 일라이자 둘리틀역을 놓고 오드리 헵번과 경합하다 결국 떨어졌다. 절치부심한 그는 대신 디즈니가 제작한 뮤지컬 ‘메리 포핀스(1964)’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따냄으로써 최후에 웃는 자가 됐다.
이밖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널렸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나이의 이야기인 ‘메멘토(2000)’를 연출해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은 원래 주연으로 알렉 볼드윈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영화의 영향 탓인지 그걸 까맣게 잊어먹고 가이 피어스를 기용했다.
--‘양들의 침묵(1991)’은 앤서니 홉킨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으나 그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체 118분 중 고작 25분에 불과했다.
-- 영화인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아카데미상의 황금빛 트로피는 그러나 색깔만 황금색일 뿐 가격은 400달러밖에 안 된다.
--2차대전 중 독일군에 잡힌 연합군 전쟁포로들의 탈출기인 ‘대탈주(The Great Escape, 1963)’의 기라성 같은 출연진 중에는 진짜 독일군 포로 출신이 한 명 있다. 나중에 제임스 본드영화 ‘007 두 번 산다(1967)’에서 악당 에른스트 블로펠드역으로 널리 알려진 베테랑 배우 도널드 플레즌스다. 그는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폭격기 승무원으로 참전했는데 1944년 그가 탄 랭카스터 폭격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독일군에게 잡혀 1년간 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고전 걸작 ‘오즈의 마법사(1939)’의 주역 주디 갈랜드는 당시 초짜 신인답게 주급 35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같이 출연한 강아지 토토의 출연료는 주당 125달러였다.
--리들리 스콧의 걸작 SF ‘블레이드 러너(1982)’는 원작이 필립 K 딕의 소설이지만 제목은 딕의 작품과 아무 관련도 없다. 딕의 원작 소설 제목은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였다. ‘블레이드 러너(The Blade Runner)’는 SF 작가 앨런 너스의 1974년작 소설에서 따왔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의료기기가 불법 거래되는 암시장 얘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고전 걸작의 대표격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캐스팅하기 위해 제작진이 오디션을 본 여배우의 숫자는 무려 1400명이었다. 그러니까 비비안 리는 14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역할을 따낸 것.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71>영화 낙수(落穗) II
입력 2016-05-23 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