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개최 문턱을 낮춘 국회법 개정안 정부 이송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일단 장고(長考) 모드에 돌입했다. 법안 자체가 휘발성이 큰 사안이어서 거부권(재의요구) 행사 여부를 곧바로 결정하지 않고 여론 추이를 먼저 지켜보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여권은 일단 개정 국회법을 ‘행정부의 권한을 마비시키는 법’으로 규정하고 재개정 필요성을 역설하는 ‘여론전’에 나섰다.
◇여권, 개정 국회법 부작용 여론전=새누리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2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국회법 개정으로 인해) 청문회가 남발되거나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될 경우 국회 운영상의 문제는 물론 공직사회에도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며 “20대 국회에서 ‘수시 청문회 도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청문제도 전반에 대한 심도 깊은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날 개정 국회법의 부작용 가능성과 본회의 상정 과정의 부당성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준비했다가 취소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상시 청문회를 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며 “(국회가) 수백명씩 불러 놓고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허다한 데, 그러면 세종시 정부 청사도 텅 비고, 정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여론전은 탐색전 성격으로도 해석된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필요성도 언급되지만 법안이 여당이 참여한 본회의에서 표결로 통과한 만큼 아직 명분이 약하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적 부담도 크다는 의견이 만만찮다. 국회는 이르면 23일 법안을 정부로 보낼 예정이어서 대통령의 재의요구 가능 기한인 다음달 7일까지 국회법 재개정 불가피성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25일부터 아프리카와 프랑스 순방이 예정돼 있어 최종 결론은 20대 국회가 개원하는 다음달 초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남발? 건전한 견제?=여야 모두 이번 국회법 개정으로 청문회 개최 문턱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관건은 청문회 개최 대상을 중요한 안건 심사에서 소관 현안 조사로까지 확대한 조문이 행정부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냐에 대한 해석이다.
문구대로라면 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현안이라고 판단하면 어떤 사안이든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 개최가 가능하다. 위원회 ‘의결’을 위해서는 안건 상정이 전제돼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의결하려면 관련 ‘청문회 개최의 건’을 상정해 투표로 결정하는 식이다. 국회법상 안건 상정은 위원장이 각 당의 간사와 ‘협의’ 해 결정토록 하고 있다. ‘합의’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간사 간 협의가 실패하더라도 위원장이 직권 상정해 의결을 강행할 수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새누리당은 과반 이상의 상임위원장 몫도 야당에 내줘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장 야당은 20대 국회 개원 후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진상규명과 어버이연합 지원의혹,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농민 백남기씨 사건 등에 대한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경우 여야 모두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두 사건은 청와대 행정관 연루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성격이 짙어 여당 반발이 크다.
그러나 야당은 여소야대 정국이 들어서게 된 만큼 개정 국회법이 기존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 국회법에서도 중요한 안건 심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 개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을 줄여 신속한 진상조사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동안은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해당 안건이 ‘중요한 안건’에 해당하느냐 등을 놓고 여야간 입씨름을 해왔다. 정의화 국회의장 역시 최근 발생한 서울 강남역 공용화장실 ‘묻지마 여성 피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공용화장실에 대한 문제점 등에 대해 곧바로 소관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개최해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개정 국회법 운명은...박 대통령, 장고 모드 돌입
입력 2016-05-22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