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사회담의 구체적인 시기까지 거론하며 대화 공세를 거듭하는 건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대북 압박 공조에 균열을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북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를 열어 외교적 고립을 단번에 타개해보겠다는 회심의 카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책임을 남측에 돌리는 한편 향후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명분’을 쌓으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완화하고자 의도적, 강제적으로 대화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군사회담을 제의함으로써 이슈를 (한반도) 평화, 그 다음으론 자기들 안보 문제로 가져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 등 대북 압박이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가 열린다면 북한 입장에선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울 수 있다. 그동안 강력한 의지로 대북 압박을 주도해왔던 남한이 돌연 북한과 대화를 하는 그 자체가 국제사회의 제재 이행 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를 남측에 돌리려는 측면도 있다. 현재 남북간에는 판문점 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등 모든 연락 채널이 단절돼 우발적 충돌을 관리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자”며 군사회담을 제안해온 건 자기들이 남북 대화의 ‘명분’을 선취하겠다는 의도다. 향후 우발적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남측에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남한 사회 내부의 ‘피로감’을 의식한 부분도 없지 않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신들이 남북간 대화를 선점하겠다는 측면이 있다”면서 “남북간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해 자신들이 노력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와 북한 내부에 과시하는 한편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군사회담은 ‘구실’일 뿐 장기적으로 북·미 대화를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가장 관심을 갖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은 남북 대화로 해결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군사회담 제안을) 남측이 받든 안받든 대화를 제의했다는 명분을 확보하고 북·미 대화를 위한 ‘길 닦기’ 용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을 주장하는) 중국에 대해서도 ‘이미 대화를 제안했다’고 말할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막판 변수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기조도 백지화될 것으로 보고 사전 정지작업을 하려는 속셈이란 얘기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잇단 평화공세 북한의 노림수는...대북제재 균열과 북미 대화 '길 닦기'
입력 2016-05-22 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