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빠다49>집으로 가는 길

입력 2016-05-21 06:00
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인영이가 5일간의 병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mtx라는 고용량 항암제를 맞았기 때문에 몸에 남아있는 독성 농도가 0.1 이하로 떨어져야 집에 올 수 있는데 윤영이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수치가 떨어졌다.
짐을 챙기러 가보니 인영이는 병동 내 언니·오빠, 이모들, 간호사선생님 등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꽃 원피스에 선글라스에 끼고 병동 복도가 우리 집 거실인 마냥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영아, 가서 뭐 먹을 거야?”
“롸면, 치킨”
“인영아, 가지 말고 이모랑 있자.”
“…”(후다닥 도망침)
인영이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스마트 폰을 쥐고 감격해하고 있다.


인영이는 차에 타자마자 작별 세리모니가 힘들었는지 바로 잠들었다가 세종 이마트가 가까워지자 동물적으로 눈을 떴다. 장난감을 하나 쥐어주고(인영이는 엄마를 못 믿어 계산대까지 고른 장난감을 꼭 쥐고 놓지 않는다) 집에 왔다. 집은, 그냥 좋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좋은 게 집이다. 모든 장난감을 하나하나씩 다 갖고 노는 인영이를 보면서 나와 아내는 긴장이 풀어지면서 급 피로가 몰려왔다. 아내는 이내 곯아 떨어졌다. 이제 10일 뒤 시작될 2차 고용량 항암치료까지 또 한번의 즐거운 휴가가 돌아온 것이다.
구세군 황선엽 사관님과 이호영(맨 왼쪽) 국장님이 인영이 병문안을왔다. 핸드폰을 통해 기도를 해주시는데 인영이는 계속 아빠를 부르며 유리벽을 두드려대 기도 중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소중한 만남도 있었다. 구세군 황선엽 사관께서 인영이 병문안을 왔다. 20년 가까이 노숙인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는 이호영 국장님이 인영이 소식을 듣고 황 사관님을 모셔왔다. 처음 뵌 황 사관님은 3년 넘게 사투를 벌여 백혈병을 이기신 선배 환우셨다. ‘발병-항암-조혈모세포 이식-재발-임상실험용 항암-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 등 어려운 치료 과정을 통해 지금은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하시고 있다고 한다. 유리벽 사이로 인영이를 위해 기도해주신 뒤 아이가 밝고 명랑해 보여 잘 이겨낼 것 같다고 하셨다. 황 사관님은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보호자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가 치료에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보다 예후가 좋았지만 신경질적이고 우울한 환자들은 어김없이 먼저 갔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자신은 재발 후 맞는 항암제가 없어 확률이 낮은 임상실험용 신약을 써야 할 때도 “성경 신구약을 다 떼게 되었네요”라며 의사에게 농담을 했다고 한다. 나 먼저 가면 찾아쓰라며 사모님에게 숨겨놓은 비자금까지 털어놓았다며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조언해주셨다.
이마트 세종점에서 득템. 아내는 인터넷으로 사면 반값에 살 수 있다며 안타까워하지만 인영이에게 선택의 기회로 설레임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집에 와 좋다고 낮잠도 안자고 버티던 윤영이는 밤에도 더 놀고 싶다며 울먹이다 잠들었다. 인영이를 재우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아내로부터 병동에 있는 다른 아이들 사연을 전해들었다. 1년 가까이 누워만 있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부터 3년 가까운 항암치료기간을 거의 마칠 즈음에 재발이 되서 다시 입원한 아이까지. 왠지 병동 내 엄마아빠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집에 간다고 신나하는 인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모든 소아 백혈병 환우 가족들이 황 사관님처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이까짓 백혈병쯤이야” 하고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다.(2016년5월20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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