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해를 품은 달’(2012)이 자꾸 떠오르는 요즘이다. 김수현의 아역이었던 배우 여진구(19)가 어느새 자라 성인 역을 맡다니. SBS 월화드라마 ‘대박’에서 다시 한 번 ‘왕자님’이 됐다. 특유의 중저음 음성이 사극 톤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성년이 된 이후 처음 선택한 작품이다. 대박이 주는 의미가 분명 남다를 테다. 여진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선배들과의 호흡이었다. 연기 대가들과 합을 맞추고 가까이에서 호흡할 수 있기에, 그에게 대박은 “정말 대박인 작품”이라고 했다.
20일 경기도 일산 SBS 제작센터에서 열린 대박 기자간담회에서 여진구는 “현장에서 선배님들에게 많은 걸 배우면서 단순히 촬영 이상의 것을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또 어떤 작품으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박은 숙종(최민수)과 무수리(윤진서)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 버려진 대길(장근석)이 인심(人心)을 아우르는 지도자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극 중 여진구는 숙종의 아들이자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 역을 맡았다. 가까스로 만난 형 대길과 왕좌를 놓고 겨루게 된다.
여진구는 촬영 당시 선배들의 연기를 보며 느낀 감정을 잊지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극 중 아편을 흡입하는 아버지 숙종과 대면하는 신을 꼽았다.
여진구는 “최민수 선배님 연기는 전부터 계속 놀라웠지만 그 신은 특히 정말 쇼크였다”며 “조명 아래 넋이 나간 듯한 선배님 얼굴을 보고 소름 끼쳤다”고 회상했다. 이어 “실제 왕이 그랬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그런 설정을 하셨을까 싶었다”고 감탄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선배다. 초반에는 다가가기 어려웠을 법도 하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 진짜 부자지간처럼 지낸단다. 최민수가 연잉군 캐릭터에 대해 잔뜩 연구를 해 와서 아낌없이 연기 조언을 하기도 한다고.
“선배님 큰 아들이 저보다 한 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절 정말 아들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도 아빠처럼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현장에서 굉장히 많을 걸 알려주시거든요. 해맬 때마다 잡아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셔서 감사하죠.”
장근석과 함께한 촬영은 색다른 느낌을 줬다고 했다. 여진구는 “(장근석) 형이랑 연기를 하면 감정이 잘 느껴진다”며 “눈빛이 워낙 좋으셔서 ‘형이 지금 무슨 생각을 갖고 있구나’ ‘어떤 감정을 표현하려는 구나’라는 게 쉽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다른 선배님들과 연기하면서 눈빛을 바라보면 흡인력 있게 끌어가는 힘이 느껴지거든요. 근데 형을 보면 진짜 친형과 손을 잡고 함께 뛰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색다른 느낌이었죠. 정말 친형 같다는 마음으로 촬영하고 있습니다(웃음).”
표현해야하는 감정의 깊이가 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여진구는 “영화 ‘화이’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 대립하는 역할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며 “타인과 대립해야 하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는 외롭다는 감정이 많이 든다”고 토로했다.
“극 중에서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도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죠. 기댈수록 밀쳐지는 느낌이 들고요. (연잉군은) 외롭고 위태로운 왕자인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정은 처음 연기해 봐요. 현장에서 가끔 멍해질 때가 있어요. 궁궐 세트 안 음산하고 그늘진 곳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8회 방송을 남겨둔 24부작 대박은 아쉽게도 10% 언저리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다소 부진하다. 이에 대해 여진구는 “이름이 대박인 만큼 내심 기대도 했는데….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이 젊은 그대의 패기란.
“열심히 촬영 중입니다. 남은 8회 동안 무궁무진한 일들이 펼쳐질 거예요. 후반부 스토리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실 거라 생각해요. 대길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연잉구는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이인좌(전광렬)는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관전 포인트로 꼽겠습니다(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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