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년차 배우 장근석(29)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을 만났다. SBS 월화드라마 ‘대박’을 통해 자신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었단다. “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장근석은 20일 경기도 일산 SBS 제작센터에서 열린 대박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는 대박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무언의 무게감과 압박감을 느꼈다”며 “하지만 설렘도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모습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표현해 봤어요. 연기를 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됐어요. 연기에 대한 재미와 또 다른 가능성을 알게 해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 케이블채널 HBS 가족시트콤 ‘행복도 팝니다’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장근석은 경력 20년차 베테랑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의외였다.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에 도전한 데 대한 만족감이 상당한 듯했다.
대박은 왕(최민수)과 무수리(윤진서)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 버려진 대길(장근석)이 인심(人心)을 아우르는 지도자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대길과 그의 아우 연잉군(여진구)이 왕좌와 목숨, 그리고 사랑을 놓고 대결하게 된다.
촬영을 하면서 장근석은 갖은 고생을 했다. 살아 꿈틀대는 뱀을 뜯어먹거나 갯벌에 고개만 내놓은 채 묻히는 장면이 찍었다. 또 진흙 위를 걸어가던 게를 통째로 씹어 먹거나 심지어 똥통에 빠지기도 했다.
장근석은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그 앞에 있으면 내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며 “끝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헛구역질이 나올 때도 있지만 촬영을 할 때는 별 생각이 없다”고 털어놨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이미 어떤 것이든 다 할 준비가 돼있었어요. 그 정도로 캐릭터에 욕심이 있었던 거죠. 현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핑계도 대봤겠지만, 올해 서른 살이 됐으니 믿음직한 리더가 되고 싶었어요.”
팬 사이트에 들어가 팬들의 글을 살펴보며 더 큰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장근석은 “이번에 이 악물고 연기하는 것 같아 팬으로써 너무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봤다”며 “너무 고마웠다.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전했다.
배우들을 살뜰히 챙기는 여유도 엿보였다. 까마득한 선배 최민수·전광렬과의 호흡에 대해 “자칫 흔들리거나 기운이 빠질 수도 있는데 그 빈자리를 선배님들이 채워주신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한다. 순발력·집중력·분석력 등에 관한 힌트를 주실 때마다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언급했다.
여진구에 대해서는 “배우에게 목소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신뢰할 수 있는 감정을 만드는지 진구를 보며 알게 됐다. 나이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있고 에너지가 있더라. 뜨거운 배우더라”고 칭찬했다.
대박을 통해 본인 연기적인 역량이 얼마만큼 성장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승부를 보기 위해 작품을 하지는 않는다”며 “매번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아직도 본인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는 장근석은 “완성작이 되길 바라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끌고 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겠죠.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결과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 두려워하면서 피하는 건 저 답지 않은 것 같아요. 연기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요. 전 아직도 제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다음 작품에서도 신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습니다.”
24부작으로 기획된 대박은 앞으로 8회 방송을 남겨놓고 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대길이 왕좌를 향해가는 본격적인 여정이 펼쳐질 예정이다. 장근석과 임지연의 러브라인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도 관심사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