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콜하스, " 서울대 미술관을 모두가 지나가는 곳으로"

입력 2016-05-19 15:04
서울대미술관 입구에 조혜진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어, 캠퍼스에 웬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1988’) 집이야?”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미술관 앞.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낡은 타일, 녹슨 창틀이 1970~80년대의 기억을 소환하는 연립주택 모양 설치물 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을 둘러보고,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와 도로 그 집을 나온 학생들은 이게 뭔지 궁금하다. 자연스레 설치물 주변에 놓인 작품 리플릿을 일부러 찾아 유심히 살펴본다.

한국에 생긴 첫 대학 미술관인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 미술관(관장 정영목)이 6월 8일로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미술관은 삼성그룹이 건립비를 후원해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건물로 유명하다.

서울대 랜드마크가 된 ‘샤’자 모양 철골구조물 정문 옆에 위치하는데, 옆으로 삐딱하게 누운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외관이다. 디테일을 걷어낸 덩어리 감을 통해 건축물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거의 건축 철학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대라는 대표성, 렘 콜하스의 명망성 등이 어우러진 때문인지, 덴마크, 독일 등 각국 대사관에서 자국 미술을 알리는 전시를 열겠다며 러브 콜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대 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전을 열고 있다. 주제는 미술관 앞에 설치된, 다세대 주택을 형상화한 설치물이 보여주듯 ‘지속 가능을 묻는다’이다.

조혜진 작가의 이 작품은 다세대 주택에서 인내와 근면으로 악착 같이 살아왔던 한국 전후 세대의 ‘터전에 대한 욕망’을 떠올리게 한다. 박진영 작가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건물을 낯설게 찍은 사진 작품을 통해 재난이 일상화된 현대사회를 돌아본다. 이완 작가는 버려진 물건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은 설치 작품 등을 통해 소비 문제를 직시하고, 정직성 작가는 녹조 현상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며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김춘수, 이정민, 이인현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회화가 갖는 매체로서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 독일 작가 토마스 스트루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면서 ‘파라다이스’ 작품을 입구에 전시했다. 8명 작가의 작품 80여점을 통해 환경과 재해 뿐 아니라 소비와 이사, 종교 등 일상과 생활의 문제까지 파고들며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서울대 미술관은 도심에서 떨어진 지리적 위치, 흥행성 보다는 아카데미즘적 전시의 추구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수준 높은 전시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이 덜 알려져 있다. 서울대 학생들조차 전시관발길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이번 전시에서 조혜전 작가의 작품을 미술관 입구에 설치해 호기심 전략을 구사한 것은 그래서 유효하다.

렘 콜하스는 미술관 건물에 대해 이런 희망을 피력했다. “우리는 이 건물을 꼭 지나가야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10주년을 맞은 서울대미술관의 과제다. 7월 24일까지(02-880-9504).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